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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앞에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3) 신앙은 결국 십자가에서 드러나게 된다.십자가는 우리에게 2가지를 이야기한다.첫째, 너희는 죽어야 할 존재들이다. 둘째, 즉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 십자가 앞에서내가 죽어야 할 존재임을..내가 답이 없고, 소망이 없는 존재임을...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는다면,십자가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달을 때이다.깨달음이 커질수록, 은혜도 더욱 커진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감동이 없는가?내가 얼마나 어긋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얼마나 깨어진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내..

그 분을 바라봄으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십자가의 길'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실 수 있는 길이다. 왜냐하면 구원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그 길을 간다고 구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원자로 인정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 뿐이기 때문이다.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내 뜻을 접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보지 않느냐'의 문제이다.우리는 늘 나에게 집중한다. 나의 선택에 집중하고, 나의 결정에 집중하고.... 이것해야 합니까? 저것해야 합니까? 나에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니까 늘 버겁고 큰 짐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우리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분을 바라..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히 9:11)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제사법을 알려주신다. 그 지루한 제사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이다. 언약을 맺으시고, 회복될 길을 알려주시고... 그러기에 제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인 것이다.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결국 2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누군가는 죄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 둘째, 영원한 용서는 아니다.반복되는 제사를 통하여 인간은 깨달아야 한다. 나는 어쩔 수 없구나...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구나.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나의 힘으로 하나님과 약속을 지킬 수 없구나.. 벼랑 끝까지 가게 되며, 한계를 만나게 된다. 그러기..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롬 5:6-11)사도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에....그렇다! 십자가 사건은 '나의 어떠함'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십자가 앞에 나를 향한 그 어떤 조건도 없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에서 어떤 핑게도 의미가 없다. 다만 그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다....그리고 십자가는 '기다림'이다.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원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그 분을 향하여 원수로 살아온 것이다.그러기에 연약함을 안다는 것... 죄인임을 안다는 것...원수임을 안다는 것...

복음 제자반 1기 단체 사진

복음제자반 1기 단체사진! 어찌 복음을 다 이해하겠는가? 함께 고민하며 알아가며... 내 깨어진 모습을 바라보고 그 틈으로 드러나는 은혜의 햇살!다른 이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보고 비웃고 손가락질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앞에서 나를 나누며 나의 연약함에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회복의 자리에 서는 시간... 아플 수 있고... 힘들 수 있지만 복음 앞에 함께 반응하는 시간!복음의 완성은 주님 오셔야 한다.. 다만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고 함께 조금씩 누리며 가는 것이다!복음제자반 1기 화이팅! 반응해야 산다! 반응해야 나도 너도 우리도 산다! 10주간 달려봅시다! (이건 '반응'하는 분위기에요~)

참 심플한 기독교

사람들이 볼 때 기독교는 참 심플하다. '복음,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그것이 전부이다.그런데 심플함은 치열함의 결과이다.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 누군가 제물을 가지고 들어가서 직접 죽인다 그러면 그 피가 옷에 묻으며, 제사절차가 진행된다.그런데 성막의 울타리의 높이는 약 2,3-2.5미터이다. 밖에 있는 사람은 성막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 다만 피묻는 옷을 입고 나오는 사람만을 볼 뿐이다.너무나 단순하고 심플한 기독교! 그러나 그 가운데 우리는 십자가를 경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옷이 남겨져야 한다.그것이 왜 능력이 되는지... 그것이 왜 생명이 되는지... 그것이 왜 본질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결국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3월 30일 고난주간 드림시티 아침..

나만이 감당해야 할 몫

"그러므로 이제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왕상2:24)'왕은 여호와께서 세우셨다'고 솔로몬은 고백한다. 그것은 솔로몬의 부르심이 왕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해야 할 첫 일은 어머니의 부탁을 무시하고, 형 아도니야를 죽이는 일이었다. 어찌 그것이 행복하고 좋은 일이겠는가?각 사람들에게는 자신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부르심의 자리'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에게 박수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은 모든 이들의 마음이며 바램이다.하지만 부르심의 자리에서 나만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박수와 인정보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칭찬보다는 때로는 욕..

다 해주지 않는 믿음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왕상 2:1)다윗이 삶을 마무리하면서 솔로몬에게 해주는 유언이 참 멋집니다. 신앙을 이야기하는데 삶이 드러나고, 삶을 이야기하는데 신앙이 드러납니다.다윗은 조심해야 할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다윗이 살아있을 때 그 문제들을 다 해결하면 되는데, 그 사람들, 그 상황들을 그대로 둡니다. 아직은 연약한 솔로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데도...만약 그 사람들을 다윗이 모두 죽였으면 다윗 눈에는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고 보일 수 있지만, 솔로몬이 왕권을 이어가는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고, 이스라엘은 지파별로 분열되었을 겁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는 행동의 결과입니다....다윗이 솔로몬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또한 다 해주지 않습니..

주님의 시간에....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이리라 하고" (왕상 1:52)신앙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솔로몬의 입장이라면 아도니야를 죽여야지요. 언제 또 다시 반역을 꾀할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솔로몬은 한 번 더 기다립니다. 더 정확하게 분명한 때가 오기를 기다립니다.때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탁월하고 능력있지만, 거기에 무리수가 더합니다. 많은 성취를 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깨어집니다.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능해보이고,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그가 이룬 성취는 많은 것을 회복시키고 온전케합니다.타이밍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정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최고의 타이밍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