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말씀이야기 1968

예배드림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왕상 8:11)이스라엘에게 생명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바로 예배였다. 그러기에 출애굽을 하면서 전쟁을 해야 할 때도 오직 예배만을 위해서 레위지파는 전투인력에서 제외했다. 바로 예배를 통해서 모든 것이 시작됨을 알기에..우리 삶을 풀어가는 방법은 바로 예배이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삶이 그려진다. 보여진다. 왜냐하면, 예배 드리는 모습이 그의 삶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예배가 회복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된다. 예배가 무너지면, 내 영광이 회복된다! 바로 죽을 길(?) 가는 것이다우리 교회 사람들에게 말한다. "예배 안 드리면 망한다!" 정말이다..

한계에서....

"...물두멍...." (왕상 7:40)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은 '죄를 짓지 않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죄를 사하는 능력'이다.'죄를 짓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구나...답이 없구나... 이런 결론은 모든 사람들이 내린다.그러나 '죄를 짓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구나! 바로 이러한 결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 인생에 답이 없기에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기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구약의 제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 한계 끝에서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을 보게 된다. . . . . .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 부분만 생각하면 생각이 멈춥니다.. 아니..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맞네요... 아무..

첫 마음....

"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13년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왕상 7:1)오늘 본문은 참 이상하다...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솔로몬 왕궁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13절부터 다시 성전의 이야기가 나온다.솔로몬은 40년의 왕으로서의 시간동안 20년을 건축을 하면서 보낸다. 물론 그에게 그런 능력과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 분열의 이유가 된다.돌아보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넘어진다. 돈을 주시면, 돈으로 넘어지고, 건강을 주시면, 건강으로 넘어지고, 명예를 주시면, 명예로 넘어지고. 권력을 주시면, 권력으로 넘어지고.....방황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첫 마음을 잃어버리면 정말 갈 곳이 없어진다. 첫 마음을 갖는다는 것...

거두는 그 날을 기다리며

".. 그의 신하들을 솔로몬에게 보냈으니 이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왕상 5:1)우리는 '우리 때'에 결과를 보기 원한다. 그래서 내가 맞았음을, 옳았음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지금 솔로몬이 누리는 많은 혜택들은 다윗이 뿌려놓았던 수 많은 씨앗들이다.누군가 누리기 원한다면, 누군가는 뿌려야 한다. 누리는 사람은 뿌린 자를 기억해야 하며, 뿌리는 자는 누리는 자를 기대해야 한다.우리 모두는 누리는 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누리는 자는 '씨'를 가지며 뿌리는 자의 감격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기 때문이다오늘 하루... 비록 내 눈에 볼 수 없어도 한 알의 씨앗을 뿌려봅시다. 내 삶에...가정가운데....교회가운데...공동체 가운데.....

내 위치를 아는 축복

"솔로몬이 사는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 (왕상 4:25)다윗은 솔로몬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면서 그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지는 않았다. 정적들이 있었고, 위험요소들이 많았지만 무리를 하며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도 없고 해줘서도 안된다. 다윗의 그 상황에 대해 하나님의 자리에서 반응하지 않고, 인간의 자리에서 반응했기에 솔로몬이 바로 그 하나님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우리의 수준과 하나님의 수준은 다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 분의 능력으로 산다'하나님의 자리..

기도는 받아들임부터 시작된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왕상 3:5)기도는 '받아들임'부터 시작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임' 없는 기도는 원망과 불평에 그치며 결국 내 뜻을 이뤄달라는 것 밖에는 안된다. 내가 맞고 하나님이 틀리게 되는 것이다.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지금 이 자리를 향하고, 이 자리를 살아가게 한다.그러기에 솔로몬의 기도는 돈, 명예, 권력, 건강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 분의 뜻을 바라보며 바로 지금 이 자리를 향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주의 마음에 들었다'고 하신다!한 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십자가 앞에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3) 신앙은 결국 십자가에서 드러나게 된다.십자가는 우리에게 2가지를 이야기한다.첫째, 너희는 죽어야 할 존재들이다. 둘째, 즉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다. 십자가 앞에서내가 죽어야 할 존재임을..내가 답이 없고, 소망이 없는 존재임을...내가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는다면,십자가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기독교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깨달을 때이다.깨달음이 커질수록, 은혜도 더욱 커진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감동이 없는가?내가 얼마나 어긋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내가 얼마나 깨어진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내..

그 분을 바라봄으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 26:39)'십자가의 길'은 오직 예수님만이 가실 수 있는 길이다. 왜냐하면 구원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그 길을 간다고 구원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구원자로 인정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 뿐이기 때문이다.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내 뜻을 접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느냐, 보지 않느냐'의 문제이다.우리는 늘 나에게 집중한다. 나의 선택에 집중하고, 나의 결정에 집중하고.... 이것해야 합니까? 저것해야 합니까? 나에게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니까 늘 버겁고 큰 짐을 껴안고 사는 것이다.우리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분을 바라..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히 9:11)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신 후에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제사법을 알려주신다. 그 지루한 제사법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이다. 언약을 맺으시고, 회복될 길을 알려주시고... 그러기에 제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인 것이다.그래서 구약의 제사는 결국 2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누군가는 죄의 대가를 치뤄야 한다. 둘째, 영원한 용서는 아니다.반복되는 제사를 통하여 인간은 깨달아야 한다. 나는 어쩔 수 없구나...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구나.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 나의 힘으로 하나님과 약속을 지킬 수 없구나.. 벼랑 끝까지 가게 되며, 한계를 만나게 된다. 그러기..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롬 5:6-11)사도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에....그렇다! 십자가 사건은 '나의 어떠함'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십자가 앞에 나를 향한 그 어떤 조건도 없다. 그러기에 십자가 앞에서 어떤 핑게도 의미가 없다. 다만 그 사랑을 알아가는 것이다....그리고 십자가는 '기다림'이다.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원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그 분을 향하여 원수로 살아온 것이다.그러기에 연약함을 안다는 것... 죄인임을 안다는 것...원수임을 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