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자녀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라

[성경알아가기-4] 성경의 주제는 무엇일까?

꿈꾸는꼬목사 2022. 5. 6. 13:38

 

[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 ]
‘책’은 언제나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습니다. 주제가 책을 관통하고 있고, 그 주제에 맞춰서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책’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책이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를 위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세부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그 책의 주제를 놓쳐버릴 수도 있고, 그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책을 읽을 때 겪는 오류는 많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놓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보면서 ‘아브라함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아닙니다. 성경 전체 속에서 그 사건이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박영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루는 주제와 내용이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의 원리는 계시입니다”

쉽게 말하면 성경은 내가 알고 싶은 것, 내가 궁금해하는 것, 내가 은혜받으려고 읽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내 관심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으로 읽어야 하며,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고 싶은 것으로 읽어야 합니다. 바로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전체 주제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기에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신앙이 자라거나,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 성장하지는 않고 오히려 ‘지식’으로만 그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면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자의적인 해석을 하며,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교회에서 Q.T(Quiet Time)라는 것을 통해서 말씀을 묵상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좋지만 이것이 결국 자기 중심적인 해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Q.T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만져주신다’고 합니다. 아니요! 그 때는 사과해야 합니다. 미안하다고 해야 합니다. 나를 중심으로 큐티하기에 나타나는 실수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주제와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내 관심사가 아니라 하나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관심사로 내가 맞춰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년들이 많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비전,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행하시는 것을 보고,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맞출 때 바로 그것이 비전이 되고 꿈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제대로 읽으면 아픕니다. 왜냐하면 말씀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나 다르게 가는 우리의 마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위로해 달라고, 축복해 달라고 하지만 이런 내 상황 가운데 위로와 축복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위로와 축복과 회복은 하나님의 관심사로 우리가 향할 때 주어지고 나타납니다.

[ 파편적으로 배워온 성경 ]
지금까지 성경을 배운 사람도 있고, 처음 배우는 분들도 있지만 몇 가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왜 천지를 창조하셨을까요?
  2)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요?
  3) 왜 우리가 구원을 받아야 합니까?
  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은 무엇입니까?
  5) 구원 받았으면 다음에 무엇인가요? 구원해주신 것 그걸로 전부입니까?
  6) ‘물’로 세상을 멸하셨으니 이제는 ‘불’로 세상을 멸하시나요?
  7) 예수믿는 이유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이라면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무슨 의미입니까?
  8) 성경은 세계역사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단편적으로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주제와 구조와 흐름 속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정확한 답을 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큰 그림 가운데 성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 성경의 주제 ]
그렇다면
성경의 전체 주제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걸까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은 도대체 목적이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세상에 처음 등장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이 무엇일까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마가복음 1: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9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일까요?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선포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오셔서 선포하신 것은 공통적으로 하나님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특히 비유를 집중적으로 사용한 주제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  28:30-31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도 제자들도 이 땅에서 선포하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성경의 첫 시작은 바로 이 땅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 땅의 근원이 누구인지 보여줍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끊임없이 선포했던 이야기는 아무리 강한 나라가 있어도 결국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라는 겁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이사야  52:7

구약성경에는 가장 복잡했던 고대근동의 세계역사가 나타납니다.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이 배경이 되지만 결국 ‘하나님이 온 땅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구약은 바로 그 고백의 선포입니다.

좋은 소식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런 너저분한 포로살이 현실이 끝났다. 나를 옥죄고 있는 유혹은 끝났다. 나를 지배하는 부당한 권력의 위협과 압력은 끝났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결됩니다

[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보통 ‘천국’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죽은 후’에 가는 곳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양용의 교수는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나라’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쿠트나 바실레이아를 일반적으로 ‘통치’나 ‘왕권’과 같은 추상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이나 ‘지역’과 같은 공간적 개념보다는 ‘하나님의 통치’ 또는 ‘하나님의 왕권’ 과 같은 역동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을 대할 때,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께서 왕권을 행하심’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달라스 윌라드는 이렇게 정의를 내립니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통치란 곧 그 분의 의지가 유효한 영역, 그 분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김근주 교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은 하늘과 땅,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되게 다루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세상으로서의 하늘과 땅, 예루살렘이 존재하며,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살아가는 눈물 흘리던 백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창세기와 요한게시록은 모두 하나님의 다스리심, 하나님의 통치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가 의미하는 바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보시기 좋았더라”

창세기 1장의 모습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뤄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님의 생각이 그대로 이뤄지는 곳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 장소, 공간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김회권 교수는 하나님 나라가 이뤄질 때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개인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면 성령의 열매를 맺고,
가정에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면 생육, 번성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런 복된 가정이 많아지면 국가적으로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국가적으로 성령 충만해지면 공평과 정의의 정치가 활성화되어 원한 맺힌 사람이 줄어 들게 됩니다. 이런 국가들이 주도하는 세계가 성령의 감동에 노출되면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는 날이 옵니다. 야웨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인정과 순복이 온 세상에 가득차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온누리에 덮게 될 것입니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깨어졌고, 어떻게 회복되었고, 어떻게 완성되어지를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