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자녀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라

[창조시대] 01. 시작된 하나님 나라

꿈꾸는꼬목사 2021. 8. 31. 20:00


[ 하나님 나라 ]
창세기 1:1절은 아무런 설명없이 이 세상에 폭탄같은 문장 하나를 던진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성경은 창조의 사건들을 하나씩 이야기하지만 설득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결국 창세기 1-2장이 보여주는 것은 이 땅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것을 선언하고 선포한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며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창세기 1,2장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와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라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기도처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 하나님의 창조사건 ]
하나님의 창조는 크게 2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형태를 만드시고, 그 다음은 그 형태에 채워가신다. 1-3일은 기초를 세우시며, 4-6일은 내용물로 채우신다.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첫째날과 넷째날, 둘째날과 다섯째날, 셋째날과 여섯째날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1-3일의 창조는 땅에 집중하고, 4-6일의 창조는 사람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땅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장소이므로 창조는 최종적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날 빛과 어둠 넷째날 태양, 달, 별
둘째날 바다와 하늘 다섯째날 물고기와 새
셋째날 땅과 식물 여섯째날 땅의 동물과 인간
핵심 핵심 인간


또한 창세기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면서 창조에 대한 설명이 조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1장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며, 2장의 중심이 인간으로 바뀌어졌고, 창세기 2:4절에 보면 나타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창세기 2:4

"하늘과 땅”이 “땅과 하늘”로 바뀌어서 설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하나님이 혼돈 가운데 질서를 세우신 후에 그 질서를 유지할 피조물로 사람을 세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창세기 1장이 인류를 우주라는 무대에 등장시켰다면 창세기 2장은 인간이 그 무대 중심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의 디자인 ]
창세기 1,2장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창조는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디자인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현재의 삶 뿐 아니라, 다가올 세상,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실 세상에서 누리게 될 우리 삶의 청사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디자인을 알아야 이 세상을 바라보며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깨어졌는지 알게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것의 기준이며 동시에 시작점이 된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또한 내 자신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이제 하나씩 살펴보자.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때,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6-28

창세기 1:26-28절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크게 4가지로 보여준다.
첫째,  '창조하시되' 하나님은 창조주이다.
둘째, '복을 주시며'. 하나님은 복을 주는 분이다. 
셋째,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은 명령과 기준이 되시는 분이다. 
넷째,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하나님은 공급자가 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면 우리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실수하지 않고 지으신 존재이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복을 받는 존재'다. 우리의 매순간은 하나님의 복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명령과 기준이 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순종하는 존재'다. 우리는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순종하는 존재다.
하나님이 '공급자'라면 우리는 '공급을 받는 자'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만 살아간다.

래리크랩은 '인간이해와 성장'에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갈망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독립적인 인격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갈망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의존적인 인격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삶이 시작된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님 자리가 아니라 우리 자리에서 하나님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며, 가장 인간다운 삶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누리는 것을 나와 다른 사람, 세상에 흘려보내는 것이다. 

[ 나 자신과의 관계 ]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살펴봤다. 그러면 그러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고대사회에서는 오직 '왕'만을 신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세계관은 이야기다'에서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크 바르톨로뮤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피조물의 의존적인 삶을 뜻한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는 뜻이다.
셋째, 하나님을 반사하고 그 분을 닮고 그 분의 성품을 비추어 내는 것이다.
넷째, 그 분의 대리인과 청지기로서 창조 세계에 하나님을 대변하는 것이다.

- 세계관은 이야기다, 마이클 고힌, 크레이크 바르톨로뮤, IVP -


인간은 하나님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존귀하다. 같은 인간끼리 누군가를 '존귀'하다고 규정지을 수 없는 이유는 그런 규정은 '인간' 이상의 존재가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에 인간이 존귀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자기 자신을 대할 때는 내가 내 자신을 존중하고 존귀히 대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무시할 수 있고, 비난할 수 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며 전적으로 내 편이 되어줘야 한다. 넘어질 수 있고, 실수할 수 있지만 응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인간과 인간의 관계 ]
그러면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

"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을 평등하게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다른 인간을 성별, 피부색, 민족, 결혼 유무 등 어떤 이유로도 열등하다고 할 수 없고 착취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든 사회에 기독교가 전해지면 사회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한국교회 역시도 다르지 않다. 

전북 김제에 있는 ‘ㄱ’자 교회로 유명한 금산교회의 초기 역사에 보면 복음의 능력을 볼 수 있다.  불교의 오래된 사찰들이 많고 증산교와 같은 소위 민족종교들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는 김제에 기독교의 복음이 유입된 것은 1905년이다. 이는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 B. Tate, 최의덕)와 용화마을의 양반지주이자 마방(馬房)의 주인이던 조덕삼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조덕삼은 마방에 묵고 있던 테이트를 청하여 복음을 듣고, 자신의 사랑채를 예배처소로 내놓았는데, 이것이 금산교회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조덕삼은 집안 식구뿐 아니라 하인들에게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중에는 마부 이자익(1879-1957)도 있었다.

이후 예수에게 붙들린 조덕삼과 이자익은 힘을 모아 금산교회를 세우는데 진력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주인과 머슴이 합력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두 사람은 1907년에 함께 금산교회의 영수로 임명되었고, 금산교회는 그해에 독노회 전라대리회의 허락을 얻어 장로 투표를 실시하게 되었다. 그때 교인들과 마을사람들은 당연히 조덕삼 영수가 먼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다. 마을의 지주였던 조덕삼 영수를 제치고 그의 마부 이자익 영수가 장로로 추천된 것이다. 반상의 신분을 철저히 따지던 시대에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날 것은 뻔했다.

이에 조덕삼 영수는 그 자리에서 발언권을 얻고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한국사회에 복음이 들어오면서 신분의 차이, 성별의 차이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예수님 안에서 형제, 자매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로마의 노예들이 대량 개종사태들이 종종 일어났다. 그 이유는 노예들이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을 형제, 자매로, 한 가족으로 대해주면서 주인이 믿는 신을 자신들도 믿겠다고 하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 ]
이번에는 인간과 세상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인간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다. 하나님이 다스리셔야 하지만 인간에게 그 '다스림'을 맡기셨다. 그러기에 '다스림'이라는 말보다 '보살핌'이라는 말이 더 적당하다. 그러면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두 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 다스리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둘째, 경작하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창세기 2:4

다스림과 경작은 수고와 섬김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에덴동산에서 온 땅으로 확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은 완벽한 것이 아니라 온전한 것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가야하는 것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우리 각자 삶의 자리를 경작하며 더 아름답게 세워가야 가며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계속 주어진 부르심이었다.

 

[ 함께 나누기 ]

1. 창세기 1,2장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이야기해봅시다.

2. 하나님이 창조하신 디자인을 보고, 지금 세상을 바라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