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자녀에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라

[성경알아가기-2] 예수 믿는 사람들은 특이해? 특별해?

꿈꾸는꼬목사 2022. 5. 1. 17:54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는 성경 알아가기의 개관을 나누면서
성경의 큰 그림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조금 더 나누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성경을 알아가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요?
성경을 알아가면 어떤 사람이 될까요?
성경을 알아갈 때 주어지는 결과를 알아야 성경을 알아가는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성경 ]
1534년 독일의 과격 단체가 뮌스터 지도자를 추방하고, 일부다처허용과 사유재산 금지, 비폭력을 주창하는 집단을 형성하였다.
1649년 선거권, 성문헌법,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요구하고, 살인을 제외한 모든 범죄에서 사형 철폐를 주장하던 세 명의 정치범이 처형되었다
1915년 한 젊은 변호사가 인도의 독립을 목표로, 평화로운 비협력 및 비폭력 항거를 골자로 하는 정치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모두 성경을 읽었다는 겁니다. 같은 성경을 읽었는데 그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2017년 한국사회는 너무나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어려움 한가운데 ‘개신교’가 위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탄핵이 진행되면서 그 갈등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탄핵을 반대한 쪽에서 태극기를 몸에 걸치고 ‘기도’를 합니다. 탄핵을 결정한 쪽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을 합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이리 다르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리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혹시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성경은 한 권입니다. 오직 한 권인 성경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이 세상이 만들어가고 싶은 세상 ]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봅시다.

"성경은 왜 읽어야 할까요?"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과는 전혀 상관없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공부하고 알아야하는 내용일까요?"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다른 나라,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비슷한 가치와 비슷한 내용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권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선포된 인권선언문을 보면

“제 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11조 조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350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만들어가기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노동자를 착취하지 마십시오. 그가 여러분의 땅, 여러분의 성읍에 사는 사람이면 동족이든 아니든 그를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하루 일을 마칠 때면 반드시 그에게 품삯을 주십시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여서, 당장 그 품삯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14-15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모습은 지금 현대 민주사회에서 추구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히 지금 시대가 말하는 인권, 즉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읽는 책이 ‘잠언’서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좋은 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언은 모세 5경의 구체적 생활적용편입니다. 모세 5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만들어 가시려고 했던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모세 5경에 나오는 율법을 ‘구체적인 삶’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잠언’입니다. 

김근주 교수는 ‘복음의 공공성’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형성,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의 의미는 서로 연결되며,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은 정의와 공의를 기초로 한다”

인문학자 김용규는 '생각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에는 그것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이 있어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무엇에게나 똑같이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예컨대 '물은 언제 어디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계절은 후환한다'와 같은 것을 깨달았다. 또한 사람에게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법칙이 있으며, 신은 자기들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돌본다는 것도 깨달았다. 인류가 최초로 '보편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히 신화에서 자연으로 옮아가게 되었고, 보편적 자연법칙을 탐구하려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학문의 시작이다. 또 다른 한편의 관심은 인간 자에게로 옮아가 삶에 관한 보편적 법칙을 알아내려 했다. 이른바 지자, 현자, 예언자들이 일상적 삶, 때로는 부귀영화까지 버리고 유랑을 하거나 광야로, 숲으로, 높은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개인적, 사회적 삶의 바탕이 되는 지혜들을 갖고 돌아왔다. 이것이 유교, 불교, 나중에는 기독교와 같은 보편 종교의 시작이다"

종교가 가진 것은 다름 아닌 '보편성'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만들어가려는 세상과 하나님이 만들어가기 원하시는 세상은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비슷합니다.
물론 ‘어떻게' 그런 세상과 사회를 만들어가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성경과 이 세상의 접근방법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 세상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만들어가려고 하고, 성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한 가지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순하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종교활동’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종교활동을 통하여 우리 삶에서 어떤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가? 그것이 본질입니다.

우리가 성경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이 시대가 보기에도 상식적이고,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모습이 나타날 겁니다. 아니 그것을 넘어설 겁니다. 상식을 무시하면 특이해지지만, 상식을 초월하면 특별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분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원리 역시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묵상하면 할수록 이 세상을 살아가는 통찰력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겠지요. 그러기에 구약성경의 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사람을 알아간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말하면 우리는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을 ‘목자’라고 말하면, 우리는 ‘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면 다름 아닌 인간,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과 세상은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세상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더 본질적으로 이해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통찰력은 나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누구신가? ‘자존자, 스스로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나옵니다. 인간에게 ‘복’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복’입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어려움이 없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더 복된 사림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알아간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며,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을 알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