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존재교육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존재'

꿈꾸는꼬목사 2020. 5. 30. 07:19

 

 

 

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면서 주어진 것은 '존재교육'이다.

존재는 존재에 맞는 결과를 만든다.

그렇다면 결과가 아니라

존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뭐라고 말할까?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관계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러기에 인간은 탁월하고,

또한 탁월함에 대한 갈망함이 있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하면서 몸부림을 치려고 하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며,

탁월하고 싶어하는 목마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탁월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모든 관계를 더 풍성하게 누렸고,

이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서

탁월함의 방향이 달라졌다.

결국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탁월함으로 바뀌었고,

혼자 살아내기 위한 발버둥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이 탁월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관계는 깨어지고 외로워지며 자기 자신도 무너져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탁월하다.

그런데 죄가 가로막은 것이며

창조 때 주어진 탁월함이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탁월하려고 하면 할수록 무너지게 되었다.

 

십자가의 능력이 무엇인가?

그 죄를 치워버리신 것이다.

그러기에 다시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탁월함이 드러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왜 탁월함이 드러나지 않을까?

'죄의 습관'이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장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냥 머무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방향은 명확하다.

'죄의 습관'을 제거해주는 것이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한 존재의 탁월함이 드러나게 된다.

 

새로운 학교를 준비하면서 교육의 목적이 드러난다.

 

"아이들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탁월함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교육은

교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교과 공부하는 것이 '존재교육'을 위한

'도구'가 된다.

교과 공부를 통해서 존재가 만들어지고,

그 '존재'를 통해 배운 것이 세상 가운데 드러낸다.
결국 교과목은 '도구'이며 '통로'이다.

 

새로운 학교는

교과목을 배울 때 어떻게 배우느냐?

 

'존재교육'은 핵심적으로  2가지를 교육하는데

하나는 죄의 습관을 제거해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올바른 가치를 배우고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두 가지 '존재교육'을 가지고

교과목 공부를 하는 것이다.

같은 공부를 해도 존재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과목은 동일할 수 있으나

존재교육이라는 기초를 가지고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

"이런 교육이 새로운 학교에서만 가능한가?"

이 부분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