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하게 된다.
'기존에 학교가 많은데 또 해야하는가?'
'이런 교육은 기존교육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많은 교육은 이러한 가치를 가지고 시작한다.
성품을 강조하고, 인격을 강조한다.
착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육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를 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교육 역시도 사회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좋은 학교는 자본주의의 가치가 기준이 된다.
진학률, 취업률이 중요하다.
결국 이러한 시대 속에서
살아내기 위한 것이 방편이 교육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러한 '존재교육'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존재란 관계를 통해 규정되는데,
인간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면
결국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존재가 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부적인 요소가 '나'라는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악착같이 사는 이유가 있다.
외부의 성취와 결과물이 없으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보면서도 지금 시대는 외면한다.
열심히 살았으나 행복하지 않은 삶...
성공했으나 깨끗하지 않은 삶....
화려해보이나 공허한 삶...
앞과 뒤과 다를 수 밖에 없는 삶.....
그럼에도 지금 세상은 모르는 척 하고 달려간다.
그 대가는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한다.
이미 존재가 규정된다.
'규정된 그 존재'는 다른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이미 규정된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규정한 존재의 크기에 따라서
규정당하는 존재의 크기가 결정되기에
인간이 다른 그 무엇보다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는 가치는
기독교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기에.....
'존재교육'을 하는 많은 기관과 학교가 있다.
그러기에 꿈꾸는학교가 유일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학교가 많아지는 것이 좋겠다.
그래야 함께 세워가고, 만들어가며,
창조적 소수가 다수가 되면 세상은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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