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는 것이요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받든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것이다.
p.14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그리스도를 통해'라는 이 보편화된 기도 공식은 우리를 '중보'의 개념으로 이끈다.
p.15 성부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활동들을 직접 취하시지 않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취하시며,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 함을 선포한다.
p.16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온 한가지 근본적인 확신이 있다. 인간은 오직 "우리 구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고 그 분께 갈 수 있다는 것, 여기 '통해'라는 단어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꼭 필요한 뭔가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열린 길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을 수 없는 간격을 잇는 유일한 다리이다.
p.16 이 간격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이 놓는 다리들로 안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인정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간격을 넘을 수 없다.
p.2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
p.33 결국 하나님은 계시와 구속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셨다. 그 분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는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요, 그 분이 자신을 위해 우리를 구속하신 것도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p.34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계시하신 영광을 더 많이 깨닫도록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을 비춰주시는 대로 우리의 그리스도다운 통찰은 자라간다.
p.35 지금까지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살펴본 첫 번째 부사구에 그것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는 것이오,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받든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것이다.
우리의 기초이신 그리스도 '위에'
우리 신앙과 교회의 터는 오직 그리스도이며,
그럴 때에만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울 소망을 품을 수 있다.
p.42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도적으로 은혜를 베푸셨다면, '위에'라는 단어는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셨고, 우리는 그 분이 하신 일 위에서 안식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셨고, 우리는 그 독특한 계시 위에 우리의 삶을 짓는다.
p.43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일을 다 이루시고 '쉬신다면' 우리도 그 완성된 일 안에서 혹은 그 위에서 '쉬어야; 한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신다. (히브리서 4:10)
p.44 구원의 믿음은 곧 안식의 믿음이며 전적으로 구주를 의지하는 신뢰이다. ' 몸의 무게를 몽땅 기대다'
p.55 인생의 두가지 기초는 무엇인가? 그 분의 말씀은 더 없이 명확하다. 듣고 행하는 것이다. 차이는 지각과 무지가 아니라 순종과 불순종이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
가지가 나무네 연합되어 있고, 사지가 몸에 연합되어 있고,
성부와 성자가 삼위일체 안에 연합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인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p.64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 분의 내부에 자리하거나 안전하게 그 분 안에 갇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친한 인격적인 관계로 그 분과 연합되어 있다는 뜻이다.
p.66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
1)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연합 자체가 없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2)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약 복음의 핵심이다.
3)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세계의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만의 독특한 특성이다.
p.72 연합하기에 주어지는 3가지 복이 있다.
1) 새로운 신분의 복 (우리는 그분과 새로운 관계에 놓인다)
2) 새로운 생명의 복 (우리는 성령으로 새로워진다)
3) 새로운 공동체의 복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p.83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살아있는 성장의 체험이다.
p.8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면 우리 쪽에서 능동적으로 취해야 할 몇가지 조치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물라, 거하라는 명령은 지칠 줄 모르는 집요하게 그 분을 좇는 추구를 뜻한다. 정해진 말씀과 기도의 시간에 더욱 훈련되어 있을수록 나머지 시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과 연합하여 그 분의 임재를 누리고 그 분의 생명과 능력에 의존하여 살기가 더욱 쉬워진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 '아래'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발 아래 앉으며, 내 생각과 뜻과 신념과 기준을 그 분 아래 두기를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와 훈련 아래 있기를 원한다.
p.86 인간이 어떻게 권위에 복종하고도 진정한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러나 권위는 폭정과 같지 않다. 즉 폭정은 자유를 파괴하지만 바른 권위는 오히려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 분의 주권에는 압제의 요소가 조금도 없고, 그 주권에 복종하는 데는 귤욕의 요소가 조금도 없다.
p. 88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 분이 지극히 높아지셔서 우주 위에 왕으로 좌정하신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 분은 다른 모든 권세 '위에' 높아지셨고 그리하여 만물이 그 분의 말 '아래' 놓였다. 교회는 이 사실에 저항할 때가 아니라 그것을 즐거이 인정할 때 자신의 정체를 발견한다. 곧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그 분의 몸, 그 분의 충만함이다.... 그리스도를 섬겨 자신을 잃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
p.91 '그리스도 아래' 즉 그 분의 쉬운 멍에 아래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1) 우리 생각을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 그리스도인의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해리 블래마이어스) 에서 기독지성의 표지 6가지
(1) 초자연적 지향 (2) 악의 인식 (3) 진리의 개념 (4) 권위의 수용 (5) 인격에 대한 관심 (6) 성례전적 시각
2) 우리 의지를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p.105 사고란 진리를 믿을 때에만 자유롭다. 의지는 하나의 권위 아래 있을 때에만 자유로워진다. 바로 의의 권위이다.
우리의 비밀이신 그리스도 와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으며,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p.113 이렇듯 신약에 주어진 비전에 따르면 천국의 복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있게 된다는 이 한가지 기대에 집중된다.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은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경험하는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그 분과의 친밀한 인격적 교류룰 가리킨다.
p.116 영원히 평화로운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기 전에 우리는 험하고 혼탁한 지상에서 본분을 다하며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p.121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것은 그 분과 교제를 누리는 것 이상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 분이 이루신 전체 구원 사역의 네 가지 주요 사건, 곧 죽음, 부활, 승천, 재림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세 가지는 이미 경험해왔고, 마지막 하나는 언젠가 그 분과 함께 경험할 것이다.
p.126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통치에 재림에 동참한다는 말에는 위험이 따른다. 몇 가지 실제적인 적용이 있다.
1) 우리에게는 새로운 야망(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를 구함)이 있다.
2)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준(절제와 섬김과 경건)이 있다.
3) 우리에게는 새로운 관계(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입는 겸손과 사랑)가 있다.
우리의 목표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향해' 사는 것인데,
이는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내 삶과 일을 그 분께 가져가는 훈련과 다르지 않다.
p.134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정말 흥미로운 점은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가이다.
p.136 지나치게 단순화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가정이든 직장이든 교회든 지역사회든 조화로운 대인관계의 주된 비결은 '그리스도를 향해' 사는 법을 배우는데 있다고 확신한다.
p.136 교회에서의 관계 : 사도가 근심한 것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사소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그런 차이 때문에 서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기독공동체에서 좋은 관계를 이루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요 그리스도인들은 '그 분을 향해' 산다는 인식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책임은 나 자신이 '주를 향해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살 자유를 주는 것이다.
p.142 일터에서 우리의 관계 : 각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배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p.147 세상에서 우리의 관계 : 테레사수녀 " 모든 수녀는 가난한 사람의 인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한다. 일이나 사람이 혐오감을 줄수록 수녀는 그렇게 흉하고 위장하고 계신 우리 주님을 더 큰 믿음과 사랑과 즐거운 헌신으로 섬겨야 한다"
p.155 모든 상황과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서 또한 배후에서 그 분을 보며, 그렇게 그 분을 보면서 그들을 그 분을 대하듯 대하게 된다. 그
우리의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셨기에 우리도 그 분을 위해 행동하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도 그 분을 위해 선교를 감당한다.
p.165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는 새로운 삶은 많은 형태를 띈다.
- 그리스도를 위한 순종 :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다른 모든 순종과 다르다. 그것은 노예나 군인의 순종이 아니라 본질상 사랑의 순종, 즉 명령하신 분을 알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순종이다. 예수님이 순종을 요구하시면서 그것을 설명하시고 정당화하시는 방식
- 그리스도를 위한 선교
-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주신 한 쌍의 선물로 연결 짓는다.
p.180 십자가가 항상 보이는 자리 :
우리의 모본이신 그리스도를 '처럼'
겸손, 희생적인 섬김, 보복 없는 용서, 믿음과 순종,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나사렛 예수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p.187 토마스 아 케피스는 그 분을 닮으려 하기 전에 먼저 그 분을 묵상하라고 말한다. 그 분의 독특한 생애를 묵상하는 사람은 그 분과 우리 사이의 거대한 간격, 완전함과 죄의 간격을 본다.
p.188 그리스도를 닮는 일의 중요성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바다.
- 하나님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닮게 하시는 중이다.
둘째, 지켜보는 세상이 보기 원하는 바다.
p.198그 분의 모습을 간략히 그려보고자 한다.
첫째,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신 분이다.
둘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섬기신 분이다.
셋째, 원수를 사랑하신 분이다.
넸째,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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