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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결같이 길을 걸으며.....
Part 5 Mosaic Life/BOOK SUMMARY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by 래리크랩

by 꿈꾸는 꼬목사 2020. 3. 4.

 

p.2 요나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요나는 거부학 달아났다.
사울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울은 왜곡하고 부정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박국은 전율하고 신뢰했다.

p.30 뒤틀린 거짓 복음의 현대판 변형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하나님이 협조적이라는 거짓말로 왜곡한다. 내가 올바르게 행동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내 인생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p.36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질문
첫째, 왜 곡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둘째, 왜 실패는 그리스도의 삶에서 계속 존재해야 하는가?
셋째, 목적없이 우연히 일어나는 고난에, 그리고 우리가 거부하고 힘껏 노력하지만 가끔 그럴 수 없어서 반복되는 실패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p.46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택지
선택 1 실패가 계속되는  힘겨운 삶으로 부르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그 분에게서 달아나 휠씬 나아 보이는 생활 방식으로 가라. 번영과 치유 혹은 최소한 기분 전환을 추구하며 살라. 기분이 휠씬 좋아질 것이다.
선택 2 하나님께 매달리되 그 분의 메시지를 왜곡하여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생각, 또 하나님이 당신을 어떻게 인도하셔야 하는지에 대한 당신의 이해와 더 긴밀하게 일치시키라. 그 과정에서 당신은 여전히 하나님을 따르고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라.
선택 3 고난과 실패를 거쳐 당신 자신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도록 인도할 복음의 이야기를 들으라.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당신의 생각이나 길보다 휠씬 높아서 종종 이해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라. 하지만 영원한 심판을 바땅히 받아야 했을 그 때 당신을 위해 돌아가신 하나님이 선한 것을 성취하고 계시다고 신뢰하라. 그 분은 언제나 선한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하나님은 결코 그보다 못한 것을 이루지 않으신다. 

p.55 요나이야기의 핵심요소 다섯가지
하나, 성경에서 요나서는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그 분께 말조차 하지 않은 유일한 예언자의 이야기다.
둘, 요나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과 자신의 고민을 나누는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달아나기 위해 배에 올라탔고, 배에 오른 뒤 재빨리 잠을 청했다.
셋,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행한 회개는 얄팍했고, 따라서 그의 영혼을 형성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분에게서 달아났던 죄를 결코 고백하지 않았다. 
넷,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성실하게 전했다. 그는 잘못된 마음으로 올바른 일을 실천했다. 그는 여전히 니느웨의 파멸을 원했다. 
다섯, 요나의 거부와 도주는 그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었다. 

p.74 고난없는 상황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주실 평안이다. 

p.80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있는 가짜 복음은 이렇다.
"풍성한 삶을 구성하는 좋은 일로 가득한 좋은 삶을 하나님에게서 얻어내기 위해, 도덕성과 훌륭한 가치관과 친밀한 관계와 교회 봉사로 치장된 충분히 좋은 삶으로 기독교를 축소시키라. 만사형통 기독교의 명백한 오류는, 기독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전달되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모든 나쁜 일이 현새에 좋아질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p.84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려고 계획하신 일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과 사고방식의 변화에 달려 있다. 풍성한 삶의 의미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르다. 

p.86 공허함이란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만족되지 않는 강렬한 열망이고, 오만함이란 우리가 통제권을 쥐고 강렬한 즐거움, 하나님이 주시지 않을 즐거움을 지금 경험하기를 바라는 욕구다. 

p.99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모든 일이 당신이 기대한 대로 흘러가는 척하지 말라. 하나님은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끔찍한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똑바로 보라. 첫째, 우리가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누릴 고통없는 삶을 기쁜 마음으로 기대하며 간절히 기다리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둘째, 삶의 형편이나 영혼의 상태가 어떻든 예수님철머 사랑하고 이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령의 능력을 발견하기 위해서

p.100 나는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상하며 전율한다. 나의 믿음을 지탱해 주기는 하시겠지만, 내가 기대하는대로 생명을 보호해주시는 않을 하나님 앞에서 나는 떨림을 경험한다. 

p.100 고통이 내 인생의 최종 결론은 아닐 것이다.

p.108 하나님이 오늘 좋은 소식을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 오늘 좋은 소식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p.108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식은 그 분이 하셔야 할 일에 대한 기대가 담긴 경우가 무척 많다. 

p.113 우리는 하나님께 실망할 준비, 그 분의 선하심에 의문을 던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은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이는 기도하는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p.114 든든한 신뢰에 이리는 길은 불안정한 전율로 점철되어 있다. 대체 왜 그럴까? 우리가 신뢰하기 위해 전율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에는 치밀한 사고가 필요하다.

p.115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을 행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슨 선을 행하고 계실까? 가장 깊은 갈증을 인식할 때에만 우리는 이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게 된다. 

p.118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으실테고 그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신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전율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선을 행하실 것이라고 신뢰해야 한다. 

p.121 최고의 선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을 누리는 것이라는 진리다. 

p.123 우리에게 좋아 보이지 않는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전율할 때라야 우리는 가장 깊은 갈증, 그리스도를 만날 때까지 결코 경험하지 못할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려는 해소하지 못할 갈망과 접촉할 수 있다.

p.124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길 앞에서 전율할 때 순진한 신뢰에서 지혜로운 신뢰로 향하는 전환이 시작된다. 

p.125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 앞에서 전율하는 것은, 그 분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신뢰 속에서 선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영혼을 열어 주는 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길이 아직 성장하고 있는 우리 정신에 혼돈과 두려움, 분노를 불러일으킬 때에도 우리는 신뢰한다. 전율은 하나님이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 갈증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이보다 강한 갈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p.131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점에 다다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내가 발견한 하나님께 매력을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렵다.

p.139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믿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p.139 방임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계신 것처럼 보일 때 사실 그 분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계신다. 

p.143 바울이 힘든 시기 한복판에 하나님에게서 들은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아무 것도 개선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p.156 하나님은 분명 돌멩이나 그것이 가하는 고통이 아니라, 이 돌멩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그 분이 염두에 두고 계신 선을 조화시키는 기회를 준다느 ㄴ점을 기뻐하신다는 사실 말이다.

p.164 삼키기 힘든 알약 같겠지만, 우리는 신뢰하기 위해, 하나님이 신뢰하기 바라시는 그 길을 신뢰하기 위해 전율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과 다스리셔야 할 일에 대한 우리의 오만한 이해에 맞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전율할 때, 우리 영혼이 열려서 그 분의 생각은 지혜롭고 그 분의 길은 선하다고 신뢰하게 된다. 

p.168 래리 크랩의 인생
 첫째, 전율은 없고 신뢰만 있었다.
 둘째, 신뢰는 없고, 전율만 있었다.
 셋째, 신뢰가 전율을 가라앉혔다.

p.201 루이스는 하나님의 생각과 길이 그 분을 찾는 그리스도인들만이 안라 그 분을 미워하는 악마에게도 당황스럽다고 주장한다.

p.211 현세에서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선하신 걸까? 그 대답은 해소할 수 있는 갈망이 지금 경이로운 만족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p.218 천국에 다다르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써 만족시켜 주실 것이라는 기대(해소하지 못할 갈망)를 포기할 때에만, 우리는 예수님처럼 지금 올바로 사랑하려는 간절한 열망(해소할 수 있는 갈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27 그들 모두 안에 무언가가 살아남았다. 선한 것, 성령께서 일깨워주신 것이다. 이것이 해소할 수 있는 갈망, 앞에 있는 것을 항상 소망하면서 힘든 시절을 견디고 계속 제대로 사랑하려고 하는 갈망이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과 열망이 시들지 않고 점점 커지면서, 좋은 때나 나쁜 때를 불문하고 인내하려는 갈망이다 .

p.227 거룩하고 주권적인 사랑의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갈망은 해소할 수 없는 갈망이다. 이러한 갈망으로 인해 우리는 충족되지 않는 열망을 품고 내적으로 신음한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 영혼 안의 모든 열망이 영원한 기쁨으로 가득 채워질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말이다 .

p.227 그런데 해소할 수 있는 갈망, 만사가 바로잡힐 때까지 우리 자신과 세상 안의 모든 과오를 성실하게 인내하려는 갈망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이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염두에 두셨던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시련을 견뎌 내려는 갈망을 충족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에 머물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차고, 심지어 고난이 오고 친구들이 실망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적 게획이 선한다고 신뢰하는 능력의 저장고를 여는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이 아버지 공유한 목적을 성취한다는 사실을 알고 십자가를 견디셨다. 우리도 동일한 이유로 우리의 시련을 견딜 수 있다.

p.234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지금도 다스리시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두가지 사고방식만 남는다. 첫째, 하늘에 계신 성부께서는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일으키신다. 아니면, 두번째, 하나님은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허락하신다. 

p.249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복과 시련 속에서 그 분의 눈 높이에서 볼 때 형언할 수 없을만큼 선한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p.254 어느 시점엔가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전율해야 할 이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본성에서 나온 사랑 개념과 들어맞지 않고, 그 분이 우리의 안녕을 지키시는 방식은 우리의 선 개념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p.258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3가지 이야기
 첫째, 정교한 주권
 둘째, 미확정 주권
 셋째, 꺾이지 않는 주권
 1) 하나님은 무엇이든 원하는 일은 자유롭게 행하신다. 
 2) 하나님은 항상 역사하시고 항상 선한 일을 이루신다.
 3) 우리 육신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악마의 지혜가 통솔하고 세상이 허용하는 사람의 분노마저도 하나님 자신이 그 무엇보다 마땅히 찬양받을 분이심을 보여주는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 .
 4) 주권적인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잃어버린 백성과 구속받은 백성이 할 수 있는 일 중 어떤 것도 자신의 목적을 꺽지 못하도록 확실히 조치하신다. 

p.274 우리는 전율하게 만드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행하신다고 신뢰할 수 있다.

p.275 하나님은 어떤 선을 행하고 계실까? 혹은 내가 앞에서 말했던 질문을 던져 보면, 대체 하나님은 어떤 의미에서 선하신 걸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우리 인생을 즐겁게 해주고 우리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역경을 최소화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일차 목적이라는 순진하고 이기적인 관념을 우리에게서 걷어 내신다. 미성숙한 믿음이 하나님의 꺾이지 않는 주권에 대한 신뢰 앞에서 굴복할 때에만, 우리는 고난을 반가이 맞이하고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더 깊은 선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오직 그 때에만 우리는 소망 가운데 안식하면서 그 분의 주권적인 사랑을 누릴 수 있다.

p.279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세 가지 예화"
 - 현대판 요나 "내가 더 잘 알아"
 - 현대판 사울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 현대판 하박국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p.306 하나님의 길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분이 항상 선을 행하고 계신다고 신뢰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에서 전율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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