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는 문화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지향하도록 우리의 사랑과 갈망을 길러 내는 '상상력의 저장고'다.
-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예배한다. 그런데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1.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예배하는 인간"
- "네가 무엇을 아느냐? 네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바람과 갈망과 욕망은 우리 정체성의 핵심을 차지하며 우리 행동과 태도가 흘러나오는 근원이다. 그렇다면 '제자도'는 우리 마음을 정렬하는 방식,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주목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기에 제자도는 앎과 믿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열망과 갈망의 문제다. 그 분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우리의 살ㅇ이나 갈망을 그 분의 사랑이나 갈망과 일치시키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원하고, 하나님이 욕망하시는 바를 욕망하고, 하나님을 열망하며 갈망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세상을 간절히 구하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줄임말로 요약할 수 있는 전망이다.
- 모든 지식이 삶의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사랑하는 존재이다 ->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암묵적 모형을 전제로 삼기 때문이다.
-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사물로 바라보는 태도가 문제다.... 지식 그 이상의 습관이 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이 지식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 우리의 사랑이 이 궁극적 목적을 바르게 지향할 때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 분 대신 다른 존재를 사랑하려고 할 때 불안과 쉼 없음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p.28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당신은 어떤 전망을 갈망하느냐이다. 당신은 원하는 바를 향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p.29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좋은 삶에 대한 전망, 우리가 '번영'이라고 여기는 바에 대한 특정한 그림에 의해 움직이고 정향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것을 원한다, 갈망한다. 욕망한다.
p.30 문제는 당신이 왕국에 대한 특정한 전망을 갈망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전망을 갈망하느냐다.
p.31 당신은 원하는 바를 향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p.33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랑이 우리가 그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작동하는 일종의 잠재의식적 욕망임을 인정해야만 이것이 제자도에 대해 어떤 의미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p.34 덕이란 좋은 도덕적 습관이다. 좋은 도덕적 습관은 선을 지향하는 내적 성향과 같다. 덕이란 사람됨의 일부를 이루게 된 성품의 특징으로, 내면화하여 거의 자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듯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내장된 본성이다. 사실 긍휼을 베풀까 말까 곰곰히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덕을 갖추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p.35 어떤 의미에서 덕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ㅇ른 법(과법이 가리키는 선)을 내면화하여 거의 자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뜻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내장된 본성이다.
p.36 덕을 교육하는 것은 십꼐명을 배우거나 골로새서를 외우는 것과 다르다. 덕의 교육은 일종의 형성, 즉 특정한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음악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피아노로 음계를 연주하는 것과 더 빗스하다. 무언가를 당신의 존재 자체에 새겨 넣는 것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p.37 덕 습득의 두 측면은 첫째, 우리는 모방을 통해 덕을 배운다. 둘째, 덕을 습득하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주기와 반복, 의례를 통해 성품에 새겨진다. 모방과 실천을 통해 배우고 습득하는 것이다. 골프 스윙이나 피아노 연주를 연습할 때 생물학적 근육이 훈련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된 도덕적 근육을 갖게 된다.
p.38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고, 사랑이 덕목이라면 사랑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 지향-우리를 특정한 형태의 선한 삶을 지향하게 만드는 갈망과 욕망-은 모방과 실천으로 형성되고 설정되기 때문이다.
p.39 제자도란 습관을 바로 잡는 것이다. 습득의 문제라기보다는 재형성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형성의 근본을 이루는 배움은 정서적이며 에로스적이다. 우리 사랑이 무엇을 "겨냥하느냐"의 문제, 즉 우리 욕망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그 분의 피조물에 바라시는 바를 지향하게 만드는 문제다.
p.41 우리 마음이 우리의 자북이신 창조주를 가리킬 수 있도록 그것을 재조정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사랑과 갈망, 욕망, 열망이 습득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랑이 습관이라면, 본보기를 모방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마음을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게 만드는 실천에 몰입함으로써 마음의 눈금을 재조정할 수 있다. 따럿 우리는 일차적으로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습득함으로써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관한 습관을 형성하는 실천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p.44 당신의 사랑을 형성하는 문제는 당신의 종교적, 영적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이 정체성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어떤 실천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통해 드러난다.
p.45 문제는 당신이 예배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예배하느냐이다.
- 당신의 사랑을 형성하는 문제는 당신의 종교적, 영적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이 정체성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어떤 실천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통해 드러난다.
p.48 기독교 예배가 본질적으로 우리가 몰입해 있는 경쟁하는 예전들, 즉 은밀히 우리의 사랑과 갈망을 사로잡고 그것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좋은 삶에 대한 잘못된 전망을 지향하게 만드는 문화적 실천에 맞서는 대항적 형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2.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p.54 때로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 나의 사랑과 욕망의 형성이 의식의 '이면에서' 일어날 수도 있따.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무의식 차원에서 내 삶을 지배하는 '텔로스'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독교 예배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바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바 곧 우리로 하여금 경쟁하는 신들과 좋은 삶에 대한 경쟁적 전망을 지향하도록 부추기는 것의 간격을 인식하고, 이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정기적으로 죄를 고백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p.59 사랑은 습관이다. 우리의 사랑이 두번째 천성과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습관이 의식 아래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인 것처럼 습관화의 과정도 무의식적이며 은밀하다.
p.62 아리스토텔레서는 "우리가 생각을 통해 새로운 습관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이해했다.
p.62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올바르게 ㅗ디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할 ㅓㄱㅅ이다.
p.65 성품과 덕도 이 무의식의 차원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습득한 습관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규정하며, 이는 다시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p.73 쇼핑몰은 신학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전적이기 때문에 종교적 장소이다. 쇼핑몰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사랑하는 것에는 대단히 관심이 많다.
p.81 쇼핑몰이 제시하는 왕국의 특징
1) 나는 망가진 존재다. 고로 나는 쇼핑한다.
2)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쇼핑한다
3) 나는 쇼핑한다(쇼핑하고 또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종교적 이미지가 신앙인의 두뇌를 자극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애플 제품이 두뇌의 특정부분을 자극한다.
4)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라
p.92 삶에서 매일 반복되는 예전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3. 성령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주신다
p.96 예전은 우리 마음의 눈금을 조정하는 기술이다. 예전은 우리의 사랑이 특정한 '텔로스'를 겨냥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사랑을 훈련한다.
p.100 생각만으로 새로운 굶주림을 얻을 수 없다...새로운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 새로운 습관을 갖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실천이 필요했다. 이렇게 습득된 습관을 버리기 위해서는 대항형성적 실천, 나의 굶주림을 유지하는 다른 주기와 반복적 행위가 필요했다.
p.103 실천이 습관을 낳았고, 이제 그 습관은 내가 그 실천과 그 실천이 약속하는 바를 원하게 만들었다. 새로운 갈망을 원하게 만들었다.
p.104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성 형성을 위해서는 수 많은 습관의 재형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 수 많은 무질서한 습관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영성형성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성령이 주시는 선물이다.
p.106 사랑이 습관인 동시에 굶주림이라면, 궁극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취향과 갈망도 같은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성찰은 중요하다. 하지만 성찰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습관을 새겨 넣음으로써 우리의 굶주림을 재형성하는 새로운 실천을 시작하겠다는 자극을 얻어야 한다.
p.107 거룩해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 과정은 오디오북을 듣는 것보다는 웨이트 와처스 프로그램과 더 비슷하다.
p.108 제자도는 일종의 이민과 같아서, 어둠의 왕국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천상의 여권을 받는다. 새로운 왕국으로 옮겨 가는 것은 다른 영토로 순간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습관을 획득해야 한다.
p.111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성육신적 교휸에 관한 예화다. 주님은 우리가 습관의 동물임을 아신다. 그 분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굶주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아신다. 습관을 형성하는 실천이 우리 안에 우리의 욕구와 갈망을 새겨넣은 것을 아신다.
p.112 달라스 윌라드가 훈련의 영에 관해 말할 때, 영적훈련은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다. 즉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사역이 가장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이뤄지는 공간은 그럴 가능성이 가장 적어보이는 곳이 바로 교회다.
p.115 성령은 이런 물질적 실천을 통해서, 그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고 자라게 하시고 변화시키시며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다. 교회의 예배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이 강력히 임재하시는 독특한 공간이다. '예전과 의례'의 핵심은 하나님이 중심이신 강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예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p.116 종교개혁자들은 에전을 하나님의 행위와, 우리가 믿음으로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예배는 하나님이 임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자리다.117
p.121 예배는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다. 예배는 그저 우리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행하시는 공간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시 훈련시키시는 체육관이기에 제자도의 핵심이다.
p.125 예배의 핵심이 형성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왜 형식이 중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이다.
p.126 에배는 일차적으로 혁신적 창의성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혜로운 수용과 신실한 반복을 위한 공간이다.
p.129 예배를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근원적 습관을 다시 만들어 가시는 하향적 만남으로서의 초대로 이해할 때 반복은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반복은 하나님이 우리 습관을 바로 잡으시는 방식이다. 형성적 패러다임에서 반복은 거짓이 아니다. 당신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복없는 형성은 없기 때문에 이 점이 중요하다.
p.130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며,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믿기 위해서 질서에 속해 있다.
4. 당신은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가?
p.133 새로운 정보만으로는 잘못된 형성에서 해방될 수 없다.
p.135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다는 것은 그 분을 따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욕망하시는 바를욕망하는 것이기도 하다.
p.140 기독교예배의 목적은 창조의 목적과 직결된다. 기독교예배의 목적은 창조 명령의 갱신이다.
p.140 기독교 예배의 한가지 목적은 이중 의미에서 우리 "성품을 형성하는 것:이다.
p.141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성품으로, 무엇을 덕으로 삼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속한 이야기, 내가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다.
p.142 무엇을 덕으로 삼을지는 상정된 목표나 목적, 즉 텔로스와 관계가 있다. 습관이 특장한 '텔로스'를 지향하는 성향,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성향이라면, 어떤 습관이 덕인지 악덕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먼저 텔로스를 결정해야 한다.
p.142 덕은 탁월함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 덕이란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 선을 성취하게 만드는 성향이다. 다시 말해서 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ㅚ선인 '탈로스'를 지향하도록 만드는 좋은 습관이다.
p.144 기독교 예배라는 실천은 복음의 줄거리를 반영하고, 기독교 예배의 구조는 성경의 이야기 줄거리를 재연하게 해야 한다.
p.149 예배는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핵심은 모방적 설득, 즉 그런 일이 이렁날 수도 있다고 우리를 설득하는 것이다.
p.150 루이스 "저는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믿듯 기독교를 믿습니다. 그것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서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p.150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에 매료되어 살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는 회복하는 예배는 우리를 다시 이야기로 이끄는 예배다.
p.150 이야기가 성품을 형성한다.
p.172 참회의 기도문
5. 마음을 지키라 - 가정의 예전
p.179 가정이 사랑을 키우는 공간이며 우리가 아기였을 떄부터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근원적으로 형성적인 공간임을 상기시킨다. 그 분이 먼저 우리를 살아하셧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하는지는 가정에서 배운다.
p.180 우리의 리듬을 지배하는 예전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공간이 많다. 그리고 이를 예배의 형성적 실천을 우리 삶의 다른 영역으로 확장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배를 제자도의 핵심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제자도를 주일에만 한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배를 확장하여 삶의 방식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p.182 예배에 포함된 가정에 대한 강력한 두 이미지, 즉 세례와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자.
- 초대교회 이래로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p.195 이는 그들이 결혼을 통해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다.
p.202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정을 우리 욕망의 방향을 조정하는 형성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어덯게 가정은 우리 마음이 지향하는 바를 재조정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p.204 그리스도인의 공동 예배라는 리듬에 우리 가정의 일상적 박자를 맞추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p.206 가정의 형성적 의례는 단순한 '사적'실천이 아니라, 공적 영향력을 미친다.
6. 자녀를 잘 가르치라 - 신앙 교육의 예전
p.218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지도를 외우는 것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더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교육의 핵심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닐,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아닐까?
p.229 청소년 사역으 그리스도인을 형성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이들을 복음주의 클럽 카드 회원으로 묶어 두려는 최후의 노력인 경우가 많다.
p.237 형성적 청소년 사역은 몇가지 확신에서 출발한다.
1) 자녀의 신앙 형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 중 하나는 역사적 기독교 예배와 여러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에 헌신된 교회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2) 젊은이들이 더 폭넓은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성령의 리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다.
3) 재미 대신 섬김을 추구한다.
p.243 변화를 위한 교육에서는 그 이야기를 살아보는 연습을 할 기회를 제공함으롰 그들이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위 위치를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
7. 당신은 원하는 바를 만든다
p.270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르심임을 깨닫는 것이다. 성령은 당신에게 들을 귀와 볼 눈을 주셨으므로 창조세계는 우리를 부르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방이요. 그 자체가 초대장이다.
p.271 우리는 선하지만 깨진 하나님의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 비추다. 펼치다. 차지하다
1) 당신은 하나님의 형상을 비추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2) 당신은 창조세계의 잠재력을 펼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3) 당신은 창조세계를 차지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p.293 아리스토켈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을 제시한다. 그는 덕이란 실천이 필요한 습관이라고 강조한다. 습관이란 우리 성품의 일부가 된 습득된 성향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천과 반복을 통해서, 말하자면 의례를 통해서 그런 습관을 습득한다.
p.294 예배는 '주중에 하는 일'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예배 의례는 우리 마음을 훈련시키고 우리의 욕망이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향하게 한다. 따라서 예배를 마치고 일터로 보냄 받을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을 사랑하시는 분을 향한 습관으로 형성된 지향성을 지닌 채 우리의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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