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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UMMARY

습관이 영성이다

- 예배는 문화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과 그 분의 나라를 지향하도록 우리의 사랑과 갈망을 길러 내는 '상상력의 저장고'다. 
-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예배한다.

1.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예배하는 인간"

-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바람과 갈망과 욕망은 우리 정체성의 해심을 차지하며 우리 행동과 태도가 흘러나오는 근원이다. 그렇다면 제자도는 우리 마음을 정렬하는 방식,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거기에 주목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 그러기에 제자도는 앎과 믿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열망과 갈망의 문제다. 그 분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우리의 살ㅇ이나 갈망을 그 분의 사랑이나 갈망과 일치시키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원하고, 하나님이 욕망하시는 바를 욕망하고, 하나님을 열망하며 갈망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 되시는 세상을 간절히 구하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줄임말로 요약할 수 있는 전망이다.

- 모든 지식이 삶의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를 넘어 사랑하는 존재이다.

- 우리의 사랑이 이 궁극적 목적을 바르게 지향할 때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 분 대신 다른 존재를 사랑하려고 할 때 불안과 쉼 없음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당신은 어떤 전망을 갈망하느냐이다. 당신은 원하는 바를 향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랑이 우리가 그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은 채로 작동하는 일종의 잠재의식적 욕망임을 인정해야만 이것이 제자도에 대해 어떤 의미인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 덕이란 좋은 도덕적 습관이다. 좋은 도덕적 습관은 선을 지향하는 내적 성향과 같다. 덕이란 사람됨의 일부를 이루게 된 성품의 특징으로, 내면화하여 거의 자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듯한다. 생각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내장된 본성이다. 사실 긍휼을 베풀까 말까 곰곰히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덕을 갖추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 덕 습득의 두 측면은 첫째, 우리는 모방을 통해 덕을 배운다. 둘째, 덕을 습득하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주기와 반복, 의레를 통해 성품에 새겨진다. 

-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고, 사랑이 덕목이라면 사랑은 습관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가장 근본적 지향-우리를 특정한 형태의 선한 삶을 지향하게 만드는 갈망과 욕망-은 모방과 실천으로 형성되고 설정되기 때문이다. 

- 제자도란 습관을 바로 잡는 것이다. 습득의 문제라기보다는 재형성의 문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형성의 근본을 이루는 배움은 정서적이며 에로스적이다. 우리 사랑이 무엇을 "겨냥하느냐"의 문제, 즉 우리 욕망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그 분의 피조물에 바라시는 바를 지향하게 만드는 문제다.

- 우리 마음이 우리의 자북이신 창조주를 가리킬 수 있도록 그것을 재조정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사랑과 갈망, 욕망, 열망이 습득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사랑이 습관이라면, 본보기를 모방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마음을 특정한 목적을 지향하게 만드는 실천에 몰입함으로써 마음의 눈금을 재조정할 수 있다. 따럿 우리는 일차적으로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를 습득함으로써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는지'에 관한 습관을 형성하는 실천을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 당신의 사랑을 형성하는 문제는 당신의 종교적, 영적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이 정체성은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무엇을 믿는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어떤 실천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통해 드러난다.

- 기독교 예배가 본질적으로 우리가 몰입해 있는 경쟁하는 예전들, 즉 은밀히 우리의 사랑과 갈망을 사로잡고 그것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좋은 삶에 대한 잘못된 전망을 지향하게 만드는 문화적 실천에 맞서는 대항적 형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2.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때로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바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 나의 사랑과 욕망의 형성이 의식의 '이면에서' 일어날 수도 있따.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무의식 차원에서 내 삶을 지배하는 '텔로스'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독교 예배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바와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는 바 곧 우리로 하여금 경쟁하는 신들과 좋은 삶에 대한 경쟁적 전망을 지향하도록 부추기는 것의 간격을 인식하고, 이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현실과 정면으로 맞선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정기적으로 죄를 고백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 사랑은 습관이다. 우리의 사랑이 두번째 천성과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습관이 의식 아래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인 것처럼 습관화의 과정도 무의식적이며 은밀하다. 

- 아리스토텔레서는 "우리가 생각을 통해 새로운 습관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이해했다.

- 사람은 올바른 행동을 함으로써 올바르게 ㅗ디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될 기회조차 갖지 못할 ㅓㄱㅅ이다. 

- 성품과 덕도 이 무의식의 차원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습득한 습관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규정하며, 이는 다시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 삶에서 매일 반복되는 예전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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