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 이야기책을 많이 읽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중립적인 책'은 없다는 것이다. 책에는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고, 삶이 담겨져 있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 유아들을 위한 동화책, 그림책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모든 책은 의도적이다.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지만, 자녀는 그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글쓴 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게 된다. 그러기에 자녀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다른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게 해 주는 이야기
그러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인간은 문자를 만들기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기억하고 구전으로 공유하는 식으로 수천년 동안 이야기를 해 왔다.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은 이야기 속에 자신을 대입하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했다. 그러기에 '어떤 이야기를 듣느냐'가 그 사람이 갖는 믿음, 행동, 태도를 결정한다.
들려주는 이야기의 수준이 그 사람의 수준이 되기에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다. 그러면 자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우리의 자녀가 이 세상을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포스트모던 시대, 어떻게 예수를 들려줄 것인가'에서 '메타서사(metanarrative)'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렇게 정의 내린다.
이것은 작은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자리매김하고 설명하는 거대한 이야기를 가리킨다. 이 거대한 이야기는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엮어내는 상상적 또는 개념적 틀을 제시한다.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작은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일관된 전체로 엮어내는 거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야기 하나 하나를 포괄할 수 있는 큰 이야기일수록 이 세상을 바라보는 더 큰 시야를 갖게 된다. 내가 사는 동네만 아는 사람과 전 세계를 돌아다닌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경 이야기의 의의
그렇다면 가장 큰 이야기, 즉 메타서사(metanarrative)는 무엇일까? 기독교에서는 그것이 바로 성경의 이야기라고 본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를 궁극적 본으로 삼아 이야기를 창조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의 위대한 이야기의 줄기를 무의식적으로 본뜬 이야기들을 짓는데, 이것은 우리의 참된 정체성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과 우리의 참된 운명이 바로 그 하나님께 있음을 반영한다.
톨킨은 이 땅의 모든 이야기들은 성경의 거대한 이야기를 따라 하는 것으로 본다. 그것이 틀리지 않다. 성경에는 이 세상의 시작과 문제, 해결책, 그리고 그것의 완성까지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설명해주는 거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성경에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창조, 타락, 이스라엘을 향한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거대한 이야기를 결정적이고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유대인의 자녀교육
'유대인에게 배우는 부모수업'을 쓴 유현심, 서상훈은 유대인 자녀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베갯머리 교육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베갯머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조상들에 관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거나 동화책을 들려준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자녀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그 이유는 이야기에는 세계관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만들어진다. 또한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이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형성된다. 자녀들에게 성경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많은 학자들은 유대인들이 탁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통하여 불굴의 도전정신을 의미하는 '후츠파', 세상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는 '티쿤 올람',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가치 있는 일에 돈을 기부해야 하는 '쩨다카'의 삶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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