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BOOK SUMMARY

"성경 전체를 여는 문 창세기 1-11장 다시 읽기" 고든 웬함

꿈꾸는꼬목사 2020. 11. 5. 06:10

 

1. 인간을 위해 설계된 창조 : 창세기 1장 다시 읽기
- 창세기 1-11장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것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다.
- 창세기 1장은 성경신학의 윤곽을 스케치한다. 유일신론과 하나님의 주권은 신학의 근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서 인간의 차지하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복지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도 서경을 시작하는 이 장의 놀라운 특징이다.

2. 인간에 의해 훼손된 창조 : 창세기 2-4장 다시 읽기
- 창세기 2장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관심이 탁월하다는 그림을 강조한다. 
- 타락의 교리는 원역사에 급진적을 새로운 음조를 도입한다. 근동의 신학이 진보, 즉 인간 사회가 더 높은 문명을 향해 진화해갔다고 믿는반면, 창세기는 그 반대라고 단언한다. 사회는 하나님의 개입이 없다면 붕괴된다. 성경 저자들은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이것을 신와 산문으로 기록한다. 

3. 파괴되고 회복된 창조 : 창세기 6-9장 다시 읽기
- 홍수에 관한 하나님의 동기도 두 전통에서 완전히 다르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 따르면, 홍수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 내려진다. 땅 ㅜ이에 인간들이 너무 많아 천상에 있는 신들의 휴식을 방해했기에, 신들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염병을 보냈고, 그것이 실패했을 때 가뭄을 보냈고, 마침내 홍수를 보냈다. 창세기는 하나니미 홍수를 일으키게 한 것은 인구 과잉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있는 악, 특히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4. 구속이 필요한 창조 : 창세기 5-11장 다시 읽기
- 마침내 밝시 드러났다. 우리는 창세기 1-11장을 통해 고대 근동 이야기들, 특히 바빌로니아 자료들로 알려 있는 것들을 꾸준히 밖/ㅜ어 말하는 것에 주목했다. 창세기는 창조에서 홍수에 이르는 세계 역사에 대해 다신론 대신에 유일신론적 해석을 제공한다. 자연의 힘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업는 신들 대신에 창세기는 모드 다른 힘들을 총체적으로 주관하는 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인간ㅇ르 신들의 편의와 안락을 위해 만들어진 부산물로 보는 대신에, 창세기는 세상이 인간의 유익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시는 인간을 말한다. 신들의 변덕 때문에 인류에게 대참사가 들이닥쳤다고 보는 대신에 창세기는 인류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거 폭력에 심취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스스로 위로 불러들였다고 말한다. 바빌로니아는 생명이 진보한다고 생각하지만, 창세기는 인류의 흩어짐과 많은 언어의 다양성이 하나님이 행동하신 증거라고 말한다. 이 행동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기를 스스로 다스린다고 착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이다. 인류에게 희망은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로운 게획에 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남쪽 도시인 우르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서 새 인류를 이끌게 할 것인데, 새 인류는 아담과 노아와 바빌론이 실패한 것을 성취할 것이다.

5. 새창조의 희망
- 창세기 1-11장과 성경신학
 1) 하나님의 유일성과 주권
 2) 하나님의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