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4 그 분의 혁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꾸준한 인격적 관계와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통해 사람을 안으로부터 바꾸는 성품혁명이다.
p.25 지금의 삶과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내면'에 있다는 것이다.
p.36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영성 개발이란, 성령의 주도로 인간 자아의 내면세계가 개발되되 그리스도 자신의 내면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기독교 영성개발의 초점은 전적으로 예수께 있다. 목표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은 내적 변화의 결과이며, 내적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지적으로 교류할 때 이루어진다. 순종은 기독교 영성 개발의 필수적 결과다.
p.41 하나님이 의도하신 영적 성장의 결과를 얻으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 아래 정해주신 영혼의 질서를 발견하고 존중하며 거기에 협력해야 한다.
p.49 인간의 마음/의지/심령은 인생의 중앙 살림부이다. 마음이란 전인의 결정과 선택이 내려지는 곳이다. 그것은 마음의 기능이다.
p.50 인간본성의 여섯가지 측면
1) 생각(이미지, 개념, 판단, 추론)
2) 감정(감각, 정서)
- 생각을 통해 머릿속에 들어온 소재에 끌리게 하거나 등돌리게 하는 것이 감정이다. 감정과 사고는 언제나 함께 다닌다. 생각으로 머릿 속에 뭔가가 들어오지 않고는 감정도 없다.
3) 선택(의지, 결정, 성품)
-결단이나 선택은 의지의 구사다. 일으킨다는 말에는 인생에 가장 소중한 두가지를 포함된다. 자유와 창의력이다. 곧 선이나 악을 행하는 능력이다. 유혹은 생각에 죄의 의향이 더해진 것이다. 영성ㅇ개발이 가닿아 보살펴 변화시키야 할 부분이 무엇보다 바로 심령(의지)이다.
4. 몸 (행동, 물리적 세계와의 상호작용)
- 성경적 관점에서 몸이란 본질상 악하지 않다.
5. 사회적 정황(타인과의 개인적, 구조적 관계)
6. 영혼( 위 모두를 통합해 한 생명을 이루는 요인)
p.65 하나님 없는 삶의 지배질서는 이렇다.
몸 -> 영혼 -> 생각 (사고/감정) -> 심령 - _ 하나님
p.66 하나님 아래 있는 삶의 지배 질서는 이렇다.
하나님 -> 심령 -> 생각(사고/감정) -> 영혼 -> 몸
p.67 물론 심령이 먼저 하나님을 통해 그 분께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죄와 허물로 그 분께 죽어 있다. 일단 심령이 하나님 안에서 살아나면 자아의 모든 측면을 하나님 아래 굴복시키는 긴 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본 영성 개발의 과정이다. 이 책의 핵심은 이것이다. 영적 변화는 인간의 각 본질적 차원들이 중생한 의지의 지휘 아래, 하나님 은혜의 끝없는 주도에 협력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 변화는 단지 인간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며 의지에만 압력을 가해서는 얻어질 수 없다.
p.92 기독교적 관점에서 잃은 영혼이란 곧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사람이다.
p.99 처참한 파괴된 내 실상을 인식하지 않고는, 그리고 그 냉엄한 인식의 당연한 귀결로 내 삶의 시각과 방향을 진정 바꾸지 않고는 절대 내면 변화의 확실한 길이란 없다.
p.104 기독교의 영성개발은 자아에 대한 죽음이라는 이 필요 불가결한 기초에 의존하며, 그 기초가 견고하게 놓여서 유지되지 않는 한 진척될 수 없다. 영혼의 회복 = 자아부인
p.107 내가 원하는 일을 하되 하나님 방식으로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비로소 그들은 난생처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 원함의 변화이다.
p.114 베풂과 자신을 절대적 기준점으로 삼지 않는 선에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내 삶을 내어줄 때, 나는 내 힘과 내 부와 내 능력이상의 것을 경험해야 한다.
p.117 자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설사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놀라거나 기분 상하지 않으며, 그것이 절대 나를 지배할 수 없는 상태다.
p.127 그리스도인의 영성 개발은 자아숭배에서 자아 부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현재적이고 영원한 나라 안에서 자아 부인이 삶의 전반적 조건이 돼야 한다.
p.147 우선 우리는 남에게 관용하지 못하게 막는 내 생각, 감정, 습관적 의지, 사회적 관계, 몸의 성향을 찾아내고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생각 ]
p.161 인간이 생각으로 하나님을 처음 등진 것처럼, 심령의 변화를 향한 첫 동작이 일어나는 곳도 생각이다. 인간의 궁극적 자유란 자기 생각이 머물도록 허용하거나 지시할 곳을 선택하는 힘이다.
p.162 생각이란 우리가 사물을 의식하는 모든 방식이다. 생각은 우리 모든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생각은 감정을 유발하고, 감정은 우리 세계의 틀을 정하며 행동 동기가 된다. 감정이란 의지의 직접적 지휘 아래 있지 않다. 생각은 의지와 삶 전체의 활동 범위다. 생각의 영역에는 '개념, 이미지, 정보, 사고력' 등 네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것 둘은 개념(자신만의 컨셉)과 이미지이다.
p.168 개념과 이미지는 인간 자아와 사회에서 악의 주요 요새이기도 하다. 개념과 이미지는 우리가 일상 생활의 사건과 사물을 취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개념과 이미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궤멸시키려는 사탄의 노력의 중심점이다. 사탄은 하와를 막대기로 친 것이 아니라 개념으로 쳤다.
p.171 하나님을 떠난 삶은 거짓되고 파괴적인 이미지와 개념에 지배당한다. 그리스도 안의 영성 개발 과정이란 그런 파괴적 이미지와 개념을 예수 자신의 마음에 충만한 이미지와 개념으로 대치하는 점진적 과정이다.
p.179 하나님을 잘 섬기려면 사고를 바로 해야 한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삐뚤어진 사고는 언제나 악을 부른다. 성령의 지도와 능력 아래 성경의 정보를 바른 생각으로 취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래서 영성 개발의 확실한 길에 견고히 서는 것이다.
p.185 생각의 위험성이 있다.
1) 개념과 이미지와 소량의 정보에 대한 교만과 지나친 자부심이다.
2) 사실에 대한 단순한 무지다.
3) 내가 옳음을 입증하려는 욕심에 생각을 내 맡기는 것이다.
4) 우리가 생각 속에 들여놓는 이미지와 관한 것이다.
[ 감정 ]
p.202 단순히 감정에 정면 충돌하여, 선택의 순간 의지력만으로 감정에 저항하거나 방향을 돌리려 한다면 아무도 자기 살므이 감정 정복에 성공할 수 없다. 감정에 계속 지배당하는 자들은 전형적으로 내 감정이 채워져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자들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신 사람들은 어떤 감정이든 자신의 감정이 반드시 채워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며 깊이 받아들인다.
p.204 정체가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
p.210 올바른 행동노선은 파괴적 가정을 다른 선한 감정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파괴적 감정 - 예컨대 분노와 성적욕망-을 건설적 방향으로 다스려 영향력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p.211 주로 사랑받는 느낌이나 사랑에 빠졌다는 느낌을 원하는 사람은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 상대가 하나님이든 다른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또 평화로운 느낌을 원하는 사람은 평화를 이루는 일들을 행할 수 없다.
p.218 그리스도처럼 변화된 내면생활의 지배적 감정들은 무엇인가? 사랑, 기쁨, 평안과 관련된 감정이다. 여기서는 간편하게 사랑, 기쁨, 평안이라고 부르기도 하자.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징적인 긍정적 감정들을 수반하는 전인의 상태다.
p.224 온전한 사랑을 향한 네 가지 움직임
1) 먼저 죽으심
2) 사랑하심
3) 다른 사람을 사랑함
4) 공동체의 사랑.
- 우리 삶에 임하는 사랑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정리함녀 이렇다. 먼저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ㅣ고, 그래서 우리도 그 분을 사랑한다. 또한 우리는 그분을 통해 남들을 사랑하며, 그들도 그 분을 통해 우리를 사랑한다. 이것이 온전케 된 사랑이다.
p.231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믿음과 소망은 서로 분리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 의지 ]
p.241 그들의 사고생활은 선하고 크신 하나님께, 그리하여 진리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또 그들의 감정은 각양 풍성한 긍정적 감정에 지배당한다. 거기에는 기초 상태인 믿음과 소망과 아울러 자연히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뒤 따른다.
p.241 의지의 기능은 전적으로 생각의 내용에 의존한다. 의지/심령의 기능은 선택하는 것인데, 그것은 생각과 감정을 떠나서 불가능하다.
p.242 성인의 경우 사고란 자신이 어떤 생각을 허용하느냐의 문제이며, 감정 역시 어떤 감정을 허용하느냐의 문제다. 뿐만 아니라 사고란 자신의 어떤 생각을 바라고 구하느냐의 문제이며, 감정도 자신이 어떤 감정을 바라고 구하느냐의 문제이다. 한마디로 내 생각 상태는 내 의지가 어느 방향으로 정해지느냐의 문제다.
p.242 의지는 주어진 선택의 순간, 사고와 감정에 의존한다. 그러나 분명 사고와 감정은 그 순간에는 바뀔 수 없다. 하지만 의지/마음은 사고와 감정을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바뀐 사고와 감정을 의지는 미래의 선택 때 사용할 수 있다
p.243 내가 변하고 싶다면 필히 생각과 감정을 바궈야 한다. 결심만으로 소용없다. 그러나 사고와 감정 변화를 통해 의지가 실행되면, 그 결과 나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p.243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된 의지/마음은 어떤 모습인가?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 분의 뜻, 곧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 - 그리고 그 분을 섬기는 일과 그 분 때문에 남을 섬기는 일 - 에 대한 일편단심의 즐거운 헌신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된 의지의 모습이다.
p.246 기능적 관점에서 의지는 인간 자아의 행정 중추다. 전체 자아나 삶은 그 곳의 지시와 조정을 받도록 되어 있다. 지시와 조정을 받을 거라면 마땅히 의지에게 받아야 한다. 의지를 성경이 말하는 마음 또는 중심과 같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그렇다면 의지가 성품과 같지 않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의지들이 습관화되고 웬만큼 '자동화'됨에 따라 성품은 의지에서 개발된다. 성품이란 생각없이 느끼는 감정과 생각없이 행하는 일을 통해 가장 잘 표출된다. 그러나 그 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성품은 생각 후의 회개와 회개의 결과로 행하는 일을 통해서도 표출된다. 사고와 감정과 의지는 성품을 낳는다.
p.246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억지로 옳은 길을 가게 만드시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그 분이 인간을 지을 때 의도하신 바로 그것, 곧 성품의 자유로운 선택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의지는 인격의 핵심이다.
p.253 마음이야 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관찰하시고 상대하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 분은 의지가 우리의 중추임을 존중하시며 우리 의지를 짓밟지 않으신다.
p.255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의지에 동화시켜 나가는 과정
1) 굴복
2) 의탁
3) 자족
4) 참여
p.261 키에르케고르는 순결한 마음이란 한가지에만 의지를 두는 것이라고 했다.
p.265 그렇다면 나 자신을 잃는 것인가? 흔히들 그렇게 잘못 말하지만, 내 뜻을 제대로 하나님 뜻에 동화시킨다 해서 내 뜻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천만의 말이다. 의지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것은 난생처음 자기 모순없이 제 기능을 다하는 의지, 곧 하나님의 지도 아래 자아의 모든 부분을 서로 조화롭게 지휘할 수 있는 의지가 생긴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옳은 길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릇된 길을 가려면 자신을 거슬러야만 한다.
p.272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몸이 삶을 지배한다. 그것이 문제다. 몸은 만족의 일차적 출처가 되며 내 뜻을 관철시키는 주된, 어쩌면 유일한 도구가 된다.
p.281 우리 마음이 하나님 안의 새 생명을 얻어도 옛 '프로그램'은 여전히 새 마음에 어긋나게 활동하되 대부분 내 몸과 그 지체들 안에서 활동한다. 죄의 정욕이 여전히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 정체가 다른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로 지금 내 안에 있다.
p.284 우리가 성질이나 통제력을 잃는 대상, 곧 그 시점에서 우리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은 주변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몸과 불의를 행하려는 성향이다. 야고보와 바울이 공히 알았던 것처럼, 그 성향은 실제 우리 지체 안에 살아있는 세력으로 거한다. 화내는 사람의 신체 행동을 관찰해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p.292 몸의 영성 개발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실제로 당신 몸을 하나님께 양도해야 한다.
2) 다시는 당신 몸을 우상화하지 말라
3) 당신 몸을 오용해서는 안된다(감각의 출처, 내 몸을 지배의 도구로 쓰지 마라, 협박, 과로)
4) 몸을 잘 아끼고 돌봐야 한다.
p.303 남들이 나를 '위해준다'는 인식은 필수다. 그런 인식이 충분히 존재할 때 인간 사이에 '충족한 관계'가 생겨난다
p.306 사회적 차원의 영성 개발을 다룰 때 우리는 상처에서 시작해야 한다. 두가지 형태, 즉 공격과 철회로 나타난다. 공격은 상대의 유익과 반대되게 행동할 때, 우리는 그를 공격하는 거이다. 철회란 상대의 행복과 유익을 나와 무관한 일로 대하는 자세다. 아예 상대를 경멸하는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p.327 사회적 차원의 영성 개발 4대 요소
1) 우리가 하나님 안에 온전한 자라는 그 분의 시각을 받아들인다.
2) 사라진 방어적 태도
3) 참된 사랑이 모임을 지배한다.
4) 남을 섬기는 일에 삶을 바친다.
p.350 우리가맨 먼저 할 일은 영혼을 의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영혼의 부르짖음을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
p.383 성화를 어떻게 요약할까? 성화는 주님과 제자 사이에 상호관계가 의식적으로 선택되고 유지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제자는 자기가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능히 할 수 있고 실제로 일상적으로 행한다. 인격의 모든 측면이 실질적으로 변화됐기 때문이다. 성화는 일차적으로 도덕과 종교생활에 적용되지만, 사려 깊은 실생활 등에도 어느 정도 미친다.
p.384 빛의 자녀들의 표지
1) 그들은 잘못을 지적받을 때 절대 변호하지 않는다.
2) 그들은 죄를 짓지 않음으로 뭔가 좋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실망감과 박탈감이 없다.
3) 주로 선의 인력에 지배당한다는 사실이다.
4) 의의 길을 걷는 삶이 즐겁고 쉬워진다.
p.408 지역 교회의 영성개발을 위한 그 분의 계획이다.
1) 예수의 제자
2) 성장 단계가 각기 다른 제자들을 삼위 일체의 임재 안에서 적신다.
3)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실을 실천하는 것이 의식적 노력이 아니라 당연한 결과나 부산물이 될 정도로 네자들을 내적으로 변화시킨다.
p.423 영성 개발에서 순서상 사고가 우선임을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남들도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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