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소설, 게임까지...돈 되는 아이돌 세계관
전 세계 '아미' 끌어모은 BTS 세계관…'성장' 주제로 공감 얻어
빅히트·JYP엔터테인먼트 '세계관' 창작 위해 등단 작가도 채용
세계관을 알면 ‘덕질(팬 활동)’이 더 재밌어진다. 방탄소년단은 ‘청춘’의 성장 스토리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서사를 풀어간다.
"남준(RM)은 구치소에 갇히고, 정국과 윤기(슈가)는 죽고, 태형(뷔)은 친부 살해 용의자가 됐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 1편의 내용이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이토록 비극적으로 그려진 이유가 뭘까? 작가의 상상력이라기엔 도가 지나친 거 아닌가.
이 웹툰은 방탄소년단이 2015년 4월 발매한 '화양연화 파트.1'부터 지난해 8월 발매한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까지 이어지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마치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공통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음 작품을 펼치듯, 방탄소년단도 그들의 세계에서 캐릭터를 부여받고 서사를 풀어간다.
◇ BTS의 ‘성장’, 엑소의 ‘초능력’…세계관이 뭐길래
방탄소년단의 콘텐츠 중 세계관과 관련된 노래와 영상에는 ‘BU’ 로고가 붙는다.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공식적으로 밝힌 적 없지만, 팬들은 방탄소년단 세계관(BTS Universe)이라 읽는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고,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뜬금없이 스메랄도 꽃, 모래, 가면, 불, 초코바 등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다른 뮤직비디오에서도 반복 등장해 흩어진 서사를 연결하는 모티브가 된다.
빅히트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떡밥’이라 불리는 힌트를 줘 팬들이 세계관을 갖고 놀게 했다. 2017년부터 발매된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앨범에는 ‘화양연화 더 노트’라는 얇은 책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엔 멤버들의 이야기가 일기처럼 실렸다. 예컨대 10년 7월 23일 호석(제이홉)의 일기에서는 "엄마는 내게 초코바를 건네며 말했다. 호석아, 지금부터 열까지 세고 눈을 뜨는 거야"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서 초코바는 ‘거짓’과 ‘불행’의 상징물로, 거짓 사랑을 깨닫는 내용의 노래 ‘페이크 러브’ 뮤직비디오에 초코바 더미가 등장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책 ‘화양연화 더 노트’(왼쪽)와 웹툰.
이 밖에도 ‘데미안’(피땀 눈물),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봄날), ‘닥터 도티의 마술가게’(페이크 러브) 등 문학 작품을 연상시키는 모티브를 정교하게 담았다. 팬들은 이 단서들을 활용해 세계관을 해석하고, 제2 콘텐츠를 만든다. 구글에서 방탄소년단 세계관을 주제로 한 동영상은 2만5천여 개가 검색된다.
이전에도 세계관을 도입한 아이돌 그룹은 있었다. 2012년 데뷔한 엑소는 ‘엑소 행성에서 온 초능력 소년들’이라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다소 난해한 콘셉트지만, 어떤 그룹보다 확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H.O.T도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등 고유의 색과 숫자 등을 부여해 콘셉트를 만든 바 있다.
◇ "덕질할 맛나네" 흩어진 세계관 맞추다 보면 견고해지는 팬심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아이돌 세계관을 "서양식 팬덤 문화와 한국식 팬픽 문화의 결합"이라 짚었다. 팬픽이란 아이돌 그룹 팬들이 재창조한 2차 창작물을 통칭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H.O.T 팬으로 나온 주인공 정은지가 고교 시절 PC통신 동호회에서 팬픽을 쓰다 방송작가가 된 설정이 나왔듯, 팬픽은 아이돌 그룹 팬들이 즐기는 오랜 놀이문화 중 하나다.
김작가는 "팬들의 놀이문화를 도입해 충성도를 높이는 장치로 활용한 것"이라며 "요즘 아이돌은 기획 단계부터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를 암시하는 모티브를 콘텐츠에 심는다. 음악만 즐기는 팬들에게는 별 의미 없겠지만, 열혈 팬들에게는 아이돌을 더 즐기고 소통하게 하는 요소다. 이는 공식 활동이 없을 때도 팬심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라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콘텐츠를 보면 세계관을 암시하는 소품들이 반복해 등장한다. 예컨대 호석(제이홉)의 초코바는 거짓, 불행 등을 상징한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이 먹힌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연작 형식으로 확장했다는 것이다. 데뷔 때부터 시작된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멤버들이 직접 곡 작업에 참여해 자신들의 실제 이야기를 담아 진정성을 높였다.
가상의 세계관은 방탄소년단의 실제 성공담과 만나 시너지를 냈다. 평범한 학생에서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 그리고 그래미의 아이돌이 되기까지의 서사는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관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리더 RM이 유엔총회에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연설했을 때 팬들의 감동은 극에 달했다. 그야말로 덕질(어떤 대상에 대해 애착을 갖고 파고드는 일)할 맛이 날 수밖에.
◇ 잘 만든 세계관, 부가가치 극대화
마블은 세계관으로 막대한 경제효과를 거뒀다. 2008년 ‘아이언맨’으로 시작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지난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까지 총 20편의 영화를 만들어, 175억 달러(약 19조7700억원)의 매출을 냈다.
아이돌 세계관도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1월부터 세계관을 담은 웹툰을 7개국에 연재하고 있으며, 오는 3월에는 화양연화 시리즈 해석본을 책으로 출간한다. 상반기 중엔 게임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라인프렌즈와 제휴해 만든 캐릭터 ‘BT21’과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등 파생 상품을 내놓고 있다.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담은 방탄소년단 세계관(BU)은 이들의 실제 성공담을 만나 시너지를 냈다.
아이돌 그룹 기획사들은 탄탄한 세계관 구축을 위해 스토리텔링 팀을 운영한다. 빅히트는 등단 작가를 영입해 세계관을 만들고, JYP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스토리텔링 작가를 채용했다고 한다. 김작가는 "향후 아이돌 비즈니스는 콘텐츠 비즈니스로 발전할 것이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출처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8/2019021800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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