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왜 자녀에게 성경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위인전도 있고, 동화책도 있고, 더 좋고, 더 멋지고, 더 아름다운 책들도 많은데 굳이 성경 이야기를 자녀에게 해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이야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이야기의 3요소인 인물, 사건, 배경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되며 기승전결의 형식을 취하게 된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어떤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느냐, 누가 이야기를 만드느냐에 따라 이야기를 달라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우리 나라를 지칭할 때 '극동'이라고 불렀다. 왜 우리가 극동일까? 여기에는 이미 서양이 중심이라는 관점이 전제되어 있다.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경도선'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인데, 그곳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을 '근동', 중간쯤 떨어진 곳을 '중동', 극단적으로 많이 떨어진 곳을 '극동'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들어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유는 이미 그 이야기 안에서 갇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이야기도 중립적인 이야기는 없다. 모든 이야기에는 말하는 사람의 '세계관'이 담겨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듣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는 시야도 달라진다. 부모가 어릴적부터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은 부모와 자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모가 어떤 이야기를 해 주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는 시야가 결정되고, 다른 사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긴다.
부모는 자신의 삶에서 만들어진 아픔과 상처의 관점으로 자녀에게 이야기한다. 부모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관점은 자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세계관'이 된다. 부모의 관점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그 말은 부모의 삶이 자녀의 삶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는 것이며, 부모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삶의 모습이 자녀들에게서 똑같이 나타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너무 속상하고 너무 당황스럽지 않은가? 또한 너무 불편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할까?
가정은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확신이 서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교를 진학하고, 회사에 취업해도, 심지어 결혼하고, 또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이것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왜 그럴까?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Doing에 앞서는 것은 Being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나는 누구인가'가 결정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한다. 그러기에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Being, '내가 누구인가'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Being은 무엇이 결정할까? 바로 이야기(Story)가 결정한다. '아빠'라고 하면 '가정'이라는 이야기, '회사원'이라고 하면 '회사'라는 이야기, '목회자'라고 하면 '교회'라는 이야기에 담겨진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느냐'가 결정한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행동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져 있고, 또한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어떤 집사님은 어디를 가도 리더들과 다툼과 갈등이 생겼다. 회사에서도, 교회에서도, 어떤 모임에서도 리더들과 어려움이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계속 자기 자신을 늘 ‘피해자’라고 말하며, 자신은 손해보고, 피해보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왜 피해자라고 생각하냐'고 했더니 자신의 가정 이야기를 꺼냈다. 가정에 아픈 형이 있었는데 부모가 아픈 형에게만 모든 신경과 관심을 쏟기에 자신이 어떤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형 때문에 손해보고 피해를 봤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자신을 '피해자'라고 규정짓고, 그러기에 피해보지 않으려고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리더들과 주변 사람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가정이 중요한 이유는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을 통해 가정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며, 그 이야기 안에서 자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지며, 거기에 맞는 행동을 배워간다.
부모의 이야기가 자녀의 이야기가 된다.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가 '세바시 강연'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학생들이 똑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을 때, 학생 간의 뇌파 싱크로율이 거의 일치한다고 연구결과를 이야기했다. 더군다나 수업을 듣고 있는 동안 가르치는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과도 뇌파 싱트로율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정은 부모와 자녀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살아가기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양금희 교수는 "우리의 정체성이 이야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를 형성할 때 비로소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기독교적 차원, 양금희, 기독교교육논총 제 23집). 따라서 부모들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자녀를 대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짓게 되고,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문제아'로 규정된 아이는 문제 행동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라고 규정된 아이는 사랑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거나, 사랑 받으려는 노력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가정에서 '그 무엇도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규정되면 그 무엇도 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가정의 이야기에서 자녀들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그 정체성대로 행동한다.
자녀는 부모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듣는다
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만 5세까지 최소 4만번의 야단을 맞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한 달에 평균 666번, 하루에 22번의 나쁜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게 된다. 부모의 말을 통해 아이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이야기들 중에 긍정적인 이야기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것은 부모가 살아온 삶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기에 거기에는 부모의 상처와 아픔과 고집이 담겨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녀들은 부모가 주는 메시지를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버트 메리비언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과 의사소통할 때 언어적 요소는 7%, 비언어적 요소는 93%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어머니가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 어머니는 왜 '공부'를 강조할까? 어머니가 자라온 이야기 안에서 '공부'가 어머니의 삶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해야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고, 공부를 못했기에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부모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자녀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는 언어적 메시지가 아니라 '공부를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삶으로 만들어진 비언어적 메시지를 듣게 된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숨 쉰다. 생각해보면 부모의 잔소리는 부모의 이야기에서 만들어졌다. 부모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이야기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부모의 삶에는 해당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녀의 삶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만약 자녀가 부모의 잔소리를 100% 듣는다면 자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부모랑 똑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당신은 그것을 원하는가? 자녀가 당신과 똑같은 삶을 살아가기 원하는가? 물론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할 수도 있지만 자녀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자녀들도 부모의 삶처럼 살아가기 원할까?
2015년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부모와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1.1%는 자신의 부모님이 존경받을 부분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부모처럼 살고 싶다는 의견은 36.6%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이 통계는 너무나도 충격적일 수 있다. 자녀들은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고, 부모가 살아온 삶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싶어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자녀들이 볼 때 부모의 삶이 행복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우리 자녀가 나보다 더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고,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더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해주면 안된다. 내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해주면 안된다. 내 바램을 이야기해주면 안된다. 이 세상의 이야기를 해주면 안된다. 그러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설명해줄 수 있는 성경이야기를 해주라. 이 세상의 시작과 타락, 회복, 완성의 가장 큰 이야기를 해주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가운데 하시는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 주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 안에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야기해주라. 또한 하나님 지으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해주라.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 가슴에 손을 얹고 다같이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왜 이런 고백을 할까?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에서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셨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하나님의 꿈이 되게 하셨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어디서 이런 멋진 이야기를 해주며 내 정체성을 확인해줄 수 있는가? 그 어디에도 없다. 집에서는 부모의 기준으로 문제아일 수 있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기준으로 골칫거리 일 수 있고, 이 시대에는 부적응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 역시도 부모의 이야기, 한 사람의 이야기, 이 시대의 이야기 일뿐이다.
그러기에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라.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에 있게 하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듣게 하라. 자녀를 교회학교에 보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이야기, 부모의 상처받고 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며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해 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교회학교가 아니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교회학교만으로는 부족하다. 일 주일에 한 번, 한 두 시간 오는 교회학교에서 충분한 이야기가 전해질 수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인해 교회에 오는 것도,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어려워졌다. 이제는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자신들의 아픔과 상처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잔소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가정은 무엇인지, 아빠와 엄마는 누구인지, 그리고 너희들은 누구인지 이야기해줘야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 정체성의 맞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또한 부모가 살아온 삶과는 다른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부모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라
이 책의 목적은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돕기 위해서 씌여졌다. 하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자녀에게 들려줘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다.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내 자신이 그 이야기 안에 들어가게 된다.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해 주면 그 이야기 가운데 부모 역시도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되며,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보게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지금까지 이 세상이 주는 메시지를 듣고 허비했던 내 인생을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해주면서 다시 한 번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지 되짚어보도록 주신 기회의 시간이다.
부모들이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자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모 자신을 위해서이다.
답 없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받고 깨어진 내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가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내 자녀에게 들려주라.
우리 자녀들은 그 이야기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하는지 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자녀가 그렇게 살아가도록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내 자녀에게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이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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