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사람공부

[기사] 소 껴 안고 눈물 터뜨리는 사람들…농장마다 예약 꽉 찼다

꿈꾸는꼬목사 2021. 3. 14. 07:18

거리 두기 장기화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느는 가운데 미국에선 '소 포옹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자신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껴안으며 위안을 얻는 일종의 심리 치유법이다. [인스타그램 캡처]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인류는 '외로움'과 싸우고 있다. '흩어져야 사는' 코로나19 대유행의 역설이 낳은 슬픈 현실이다. 사람과 가까이하기 어려운 시대, 대안으로 미국에선 '소 껴안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전국적으로 수요가 늘면서 농장에 유료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몇 달 치 예약이 꽉 차고 있다. 
 

전국에서 '소와 포옹하기' 수요 급증
시간당 75달러, 7월까지 예약 마감
고립감 느낀 사람들 "위안 얻고 가"
"옥시토신 활성화, 큰 동물 효과 커"

이런 현상이 생긴 건 그만큼 정(情)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WP는 전했다. 가족이나 친구, 손주를 안기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감염 걱정이 덜하고 몸집이 큰 소에 기대며 위안을 얻고 있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 정서에 포옹과 같은 '신체적 접촉', 함께 밥을 먹거나 대화하는 '심리적 접촉'은 매우 중요하다. 어린아이의 정서 발달에 부모와의 포옹이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시대에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난 건 이 두 가지 접촉이 막힌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소 껴안기가 일종의 심리 치유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소를 안는 사람들이 많다. [인스타그램 캡처]

애리조나주의 한 농장은 시간당 75달러(약 8만5000원)인 소 껴안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오는 7월까지 예약이 차 있다.
 
스카츠데일에서 혼자 사는 르네 베인파르(43)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홀로 고립된 나날을 보냈다. 심리학자로 활동하는 그이지만, 지독한 외로움은 자신도 어쩌지 못했다. 그는 오랜 기간 기다린 끝에 농장에서 소를 안아볼 수 있었다. 소가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잠이 들자 베인파르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올해 처음 하는 진짜 포옹"이라면서 "코로나19 대유행은 전례 없는 외로움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 깊은 슬픔에 잠겼던 지니 왈렌(76)도 소를 포옹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소가 나를 웃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무릎에 기대 잠든 소를 안고 있는 여성. [인스타그램 캡처]

소 껴안기는 네덜란드에서 'koe knuffelen(코 쿠너펠렌 ·암소 포옹)'이라 불리며 10년 전부터 심리적 위안을 주는 '힐링 취미'로 받아들여졌다. 스위스와 덴마크로 번졌고, 미국의 일부 농장들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이런 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다.  
 
BBC는 소 포옹이 '옥시토신' 분비를 활성화한다고 전했다.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맺을 때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사랑과 신뢰 감정을 높여 '사랑 호르몬'으로도 불린다. 소를 껴안으면 스트레스가 줄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껴안는 포유동물의 몸집이 클수록 정서적 진정 효과가 커진다고 BBC는 전했다. 

소를 안고 행복해하는 여성. [인스타그램 캡처]

네덜란드 출신의 수잔 불러스가 뉴욕주 네이플에서 운영하는 농장은 3년 전부터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용객이 급증해 오는 5월까지 예약이 끝났다. 불러스는 "우리는 현재 친구를 안을 수도, 손자를 안아줄 수도 없다.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며 "하지만 소는 안전하고, 사람과 교감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전국 농장 곳곳에 소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료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위로받기 위해 소를 껴안는 사람들이 늘 정도로 코로나19 대유행은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 미국인의 40.9%가 적어도 하나의 정신 혹은 행동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해 미국 성인 547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소를 안고 있는 남성. [인스타그램 캡처]

국내에서도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부정적 정서가 만연하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코로나19 확산 후 느낀 감정 변화에 대해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이전보다 많이 느낀다"고 답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일상 복귀로의 낙관적 기대가 나오고 있지만, 언제부터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과 같이 활동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곽금주 교수는 "전화나 소셜미디어(SNS) 등 여러 방법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늘리고 햇볕을 자주 쬐며, 하루나 한 달간의 일정을 짜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성취감을 경험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소 껴 안고 눈물 터뜨리는 사람들…농장마다 예약 꽉 찼다
news.joins.com/article/2401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