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존재교육

[summary] 덕의 상실

꿈꾸는꼬목사 2021. 3. 5. 18:40

-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비판하기 위해서 쓴 책 '덕의 상실'
- 덕윤리는 전체가 공동체 주의다.
- 매킨타이어는 근대윤리(칸트, 공리주의-이론을 가르쳐주고 행위는 맡긴다)를 비판한다. : 개인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인정
- 공동체주의의 입장 (공동체가 덕을 판단 - 전통과 관습, 교육을 통해 훈련! 이론이 아니라 

- 근대 윤리의 한계 극복 : 원칙이나 의무를 중심하는 한계극복
1) 인격모델을 제시
2) 자연적 감정과 동기 
 3) 자발적 도덕적 행동을 하도록 고무


도덕적 다원주의 시대에 공동선을 묻다

언제부터인가 ‘도덕’이라는 말은 많은 이들에게 단지 고리타분한 가치처럼 들리게 되었다.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알고 있지만, 이제 도덕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고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것 같기에 나만 충실하기는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들 법도 하다. 누군가 도덕적 기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호소하는 것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간만이 가진 가치로서의 도덕에 대해 더 이상 호소할 수 없다면, 인류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 추구해야 할 것인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가치들을 후세에 전해줄 수 없다면, 여전히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인가?”라는 물음으로 방황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현대의 대표적 도덕철학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윤리학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가 지은 <덕의 상실(After Virtue)>은 후손들에게 긍지와 자긍심을 갖고 전할 수 있는 전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세태 속에서 지금이라도 도덕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 덕의 상실

덕(德)은 한때 동양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가치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자본과 무력을 앞세운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서양의 사상이 동양에서도 보편화하면서 의리나 인간됨 같은 낱말에 공동선의 의미를 부여했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인권이나 공익, 자유, 평등, 정의, 민주주의 같은 서구의 가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한편 신과 역사, 주체의 죽음 같은 서구적 가치의 전복에 더 익숙하다. 덕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공허하게만 느껴질 정도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이념이 존재한다는 믿음마저 낯설어지고 있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이러한 도덕상실의 시대에 ‘덕’을 이야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덕은 동양적 가치로서의 덕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간한 서양 전통으로서의 덕(virtue)이다. 그 어원은 호머의 시에 등장한 그리스어 아레테(arête)이며 모든 종류의 탁월함을 가리킨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운명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승리임을 이해하는 것도 아레테의 일종이다.

저자가 ‘고전적 전통’이라고 부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행위, 사유, 담론에 관한 자원을 제공한다고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평가한다. 이로부터 저자는 “사실된 과거의 도덕성을 확인하고 기술하고, 또 객관성과 권위에 대한 이 도덕의 주장을 평가하”고 근대의 특수한 성격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덕에 대한 그의 천착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철학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기를 원하는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비판하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고전적 덕에 관한 도덕적 체계가 상실된 이후의 상태를 역사학, 사회학 등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를 통해 분석하고 서술한다. 다양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논지는 현대 서구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의 철학적 고찰은 스스로 중세의 미몽으로부터 깨어났다고 주장한 18세기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저자에 따르면 칸트를 비롯한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과거 종교의 영역에 속했던 도덕과 도덕적 의무를 세속적인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하였다. 이로부터 그리스로부터 이어져 온 도덕체계가 이탈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공유하는 “도덕적 규칙과 계율에 관한 개념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본성에 관한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의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한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계몽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인용한다. 마키아벨리는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일반화의 목록을 모으든 간에 또 우리가 얼마나 잘 일반화들을 재 서술할 수 있든 간에 행운의 요소를 인간의 삶으로부터 제거할 수 없다고 믿었다”며 인간의 삶이 가진 예측불가능성과 취약성, 연약성을 인정했다.

계몽주의의 실패는 이후 경험주의와 공리주의 그리고 20세기 들어 융성한 정의주의를 비롯한 현대의 도덕철학들이 직면한 여러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니체마저도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고 본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현재 인간사회가 직면한 도덕적 기준에 대한 위기가,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를 도덕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덕적 어휘들이 아무런 공통분모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도덕적 어휘들은 단지 각 개인들의 주관적 의지와 기호로 환원된다. 이른바 도덕적 다원주의다. 개인들은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추구하며, 이 가치에 따라 다른 사람을 평가한다.

한편 사회는 주어진 목표를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관료제적 합리성을 추구한다. 이 같은 관료제적 합리성은 근본적으로 가치의 문제에 침묵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할 수 있는 공동선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처럼 개인 차원에서는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심미적 주관주의가, 사회 차원에서는 ‘성공적인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관료제적 합리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양극화된 현대 서양사회는 일종의 ‘유령적 자아’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구체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자신의 고유한 어떤 합리적 역사도 가지지 않은 자아는 어느 정도 추상적이고 유령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공동선을 인정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는 다원주의는 결국 인류가 어렵게 얻어낸 자유의 토대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고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경고한다.

<인류의 역사 속에 해답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도덕의 언어와 현상은 여전히 존속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바람직한 인간에 관한 해석이 역사와 전통 속에 퇴적되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와 전통이 미래의 인간을 키울 수 있는 비옥한 땅이라고 비유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어떤 종류의 삶을 살고자 지향한다면, 그 탐구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고 되짚어 생각하며 거기서부터 깨달음을 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와 인류학으로부터 다양한 도덕적 실천, 신념, 개념체계에 관해 배워야 한다”는 것은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도덕철학의 핵심 명제이기도 하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도덕철학을 비역사적으로 다루는 현대 철학과 교육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러한 도덕과 윤리에 대한 역사적 접근을 위해 저자는 현대의 개인주의를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생겨난 서양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정의하고 이전 역사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덕의 윤리를 찾아 서양 역사의 전통을 설화부터 고찰한다.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가 주목한 첫 번째 지점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사회이다. 저자에 따르면 “영웅사회의-그것이 언젠가 실존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이해는 고전사회와 그 후계자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연적 부분을 이룬다.” 도덕과 사회구조가 영웅사회에서는 동일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이해한다. 이 시기 인간적 탁월함의 모범은 전사이다.

이후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에서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선량한 시민과 선량한 인간의 관계가 핵심적인 물음이 되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덕은 현대와 정반대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즉 행복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개인으로 하여금 행복을 성취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성질들을 총칭하여 덕이라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도덕철학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는 규칙이 언급되지 않는다. 규칙에 대한 복종으로서의 도덕이라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하거나 또는 행하지 않을 행위들”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는 법률을 적용할 줄 안다는 것은 오직 정의의 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의지를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저자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지점이다. 적지 않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은 이후 신약성서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이어진다.

저자는 호머의 덕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에 이어 벤자민 프랭클린에 주목한다. 그의 덕은 “지상 적 또는 천상적 성공을 성취하는 데 유용한 하나의 성질”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 가지 종류의 덕을 통해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덕을 “하나의 습득한 인간의 성질로서, 그것을 소유와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실천에 내재하고 있는 선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며 또 그것의 결여는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들의 성취를 방해하는 그러한 성질”로 정의한다. 이는 현재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알레스데어가 전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역사적 맥락으로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때 비로서 우리는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은 “인간은 자신의 행위와 실천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김지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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