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BOOK SUMMARY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꿈꾸는꼬목사 2020. 5. 21. 13:36

 

 

- 출판 : 1976년

- 행을 위한 도는 존재이다. "노자'

- 인간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해야 할 것인가이기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 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을 더 커진다 "마르크스"

 

p.15  1954년 11우러 4일 노벨 평화상을 받으러 나온 슈바이처의 이야기 "이 초인은 자신의 힘이 커지모가 동시에 점점 더 초라한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이제 명명백해졌습니다. 초인으로서 우리는 비안긴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p.17 위대한 약속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는
 첫째, 극단적인 쾌락주의
 둘째, 자기 중심주의, 이기심, 탐욕이 조화와 평화로 통하리라는 전제이다.

 

p.18 순수하게 주관적으로 감지되는 욕망과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욕망을 구분지어 생각했다. 이 때 후자의 욕망은 인간본성의 욕구와 일치하는 반면, 전자의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인간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보았다.

 

p.22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관계에 있다. 경제체계의 발달은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그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p.24 우리의 사회경제적 체계, 즉 우리의 생활방식의 특성들이 병적 요소를 품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병든 인간과 병든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p.34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체험의 두 가지 형태로서, 그 각 양식의 강도가 개인의 성격 및 여러 유형의 사회적 성격의 차이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p.38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실존 양식을 의미한다. 소비향은 돈, 명예, 권력에의 탐욕이 삶의 지배적인 주제가 되어버린 서구 산업사회의 인간들의 특성이다. 

 

p.42 동사를 명사로 대치하는 현상. 나는 문제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론 문제 편에서 나를 소유할 수는 있다. 나는 나 자신을 하나의 '문제'로 변화시켰고, 내가 만들어낸 그것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어법은 감추어진 무의식적 소외를 드러낸다. 

 

p.46 존재는 생성과정과 활동, 운동이 존재의 구성요소라는 견해이다. 존재는 생성과정이다. 생성과정과 변화를 겪지 않는 존재란 하나도 없다. 

 

p.50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소유적 실존양식 존재적 실존양식
  꽃을 꺾는 것 - > 단절을 가지고 온다. 꽃을 보며 누리는 것 -> 
개념 세계에 대한 나의 관계는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것으로 만드는 관계.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관계이다.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소유하려고 탐하지 않고 기쁨에 차서 자신의 능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세계와 하나가 되는, 그런 실존 양식을 의미한다. 
학습 학습한 것을 기억 속에 새기거나 기록을 용의주도하게 보관함으로써 굳게 지키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생산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소유형 인간은 자신의 주제에 관한 새로운 사상이나 관념에 맞닥뜨리면 불안해한다. 새로운 것은 그가 수집하고 확보한 기존 정보를 회의하게끔 몰아세우기 때문이다.  첫 강의부터 백지상태로 참여하지는 않는다. 주제를 미리 고찰하고 특정한 문제와 의문에 대해서 골몰한다. 강의주제를 놓고 이미 씨름한 바가 있어 그것에 흥미를 느낀다. 경청하며 듣는데에 그치지 않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수용하고 대응한다. 그들이 들은 것은 그들 고유의 사유과정을 자극한다. 새로운 의문, 관념, 전망이 떠오른다. 모든 학생은 자기 나름대로 충격을 받고 변화한다. 강의를 들은 후에는 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기억 기계적으로 연결된다. 확인하는 것. 능동적 활동이다. 
대화 자신들의 견해를 놓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 견해는 그들의 소유물이며,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 용기만 지나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권위행사 권위를 소유하고 있느냐 권위로 존재하느냐.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능력뿐 아니라 고도로 자기 실현과 자기 완성을 이룩한 인간의 인격을 바탕으로 세워진다. 그런 인물에게서 저절로 권위가 배어나온다.
지식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획득하여 확보하고 있음
보다 많이 아는 것
나는 알고 있다
앎은 기능적인 것으로 생산적 사고과정의 한 부분.
보다 깊이 아는 것

신앙 확신을 심어준다. 궁극적이며 확고부동하고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이 공표되고 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럴 것이 그 신앙을 고지하고 옹호하는 측의 힘이 요지부동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음이 아니고 내적인 성향,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이 경우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신앙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사랑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가두며 지배함을 의미 존재적 측면에, 다시 말하면 상대방에게 무엇이든 베풀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는대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p.82 안식일에만은 모두가 마치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듯, 존재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목적도 추구하지 않는 듯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자신의 본질적인 힘을 쓰기 위해서 사는 것.

 

p.90 예수와 마귀는 대립적인 두 원칙을 대표한다. 마귀는 물질적 소비와 자연 및 인간을 지배하는 힘의 대표자이다. 반면 예수는 존재의 구현이며, 소유하지 않는 것이 존재양식의 전제라는 이념의 구현이다. 

 

p.96 에크하르트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욕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비집착(초연함)이라는 에크하르트적 개념이 요체이다. 

 

p.99 소유와 일에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자아에 집착하는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인간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p.100 에크하르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의 목표는 아집과 아욕, 다시 말하면, 소유적 실존양식에서 벗어나서 완전한 존재에 도달하는 것이다.      

 

p.100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무엇을 행할 것인가인기보다는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이다.

 

p.102 소유적 실존양식을 깨고 나오는 것이 모든 참활동의 전제이다. 에크하르트의 윤리적 체계에서는 내면적 생산활동이 지고의 미덕이며, 그 전제는 일체의 아집과 탐욕을 극복하는 것이다.

 

 [ 소유적 실존양식 ]

p.105 이윤추구의 사회 - 소유적 실존양식의 바탕

-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의 자아이다.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각기 소유물로 느낀다는 점, 그리고 그 사물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 소유적 실존양식은 사유재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이 양식에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나의 것으로 하는 것과 그렇게 취득한 것을 보유하는 무제한의 권리이다. 소유지향의 태도는 타인을 배제하며, 나의 재산을 지키고 그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고 부심하는 것 이외에는 자신에게 다른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주체이다.  소유적 실존 양식에서는 나와 나의 소유물 사이에 살아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내가 소유하지만,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p.116 소유 - 힘 - 저항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조절되고 조작당했다는 의식 없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다. 

- 금기는 병적인 성적 강박과 도착을 낳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성적 강박과 도착이 자유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 소유적 실존양식, 재산과 이윤을 지향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권력에의 욕구, 말하자면 권력에의 의존성을 낳는다. 그러나 존재적 실존양식에서의 행복은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 것에 놓여 있다.

 

 p.121 소유적 실존양식을 부추기는 그 밖의 요소들

- 언어는 소유지향을 강화시키는 중요한 인자이다. 

-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에는 또 다른 근거가 있다. 즉 생물학적으로 조건지어진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불멸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재산소유이다. 

 

p.123  소유적 실존양식과 항문애적 특성

- 소유지향의 지배적 특성은 완전한 성숙기 이전에 나타나며, 그 특성이 이후의 삶에도 계속 두드러지면 그것은 병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p.124 금욕주의와 평등

- 끊임없이 포기와 단념에 몰입하는 금욕행위는 어쩌면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동전의 양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p.126 기능적 소유

- 소유적 실존양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구분, 즉 기능적 소유와의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실존적(기능적) 소유는 존재와의 갈등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격으로 규정된 소유는 존재와 충돌한다. 

 

 

[ 존재적 실존양식 ]

p.128 소유는 사물과 관계하며, 사물이란 구체적이며 묘사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하며, 체험이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p.129 능동성

- 존재적 실존양식의 전제조건은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 가장 본질적 특성은 능동성이다. 인간의 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의 내면적 활동상태를 뜻한다. 

-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며,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죽은 언어가 지배하는 반면, 존재적 실존양식에서는 표현 불가능한 살아있는 경험이 지배한다. 

-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기 중심주의와 아집을 버려야 하며, 신비주의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마음을 가난하게 하고 텅 비워야 한다. 

 

p.131 능동성과 수동성

- 수동성은 존재를 배척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능동성은 활동과 단순한 분주함을 구별하지 않는다. 소외된 활동과 소외되지 않은 활동사이에 구별과 같은 것이다. 소외된 활동을 할 때 나는 나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체험하지 않고, 나의 활동의 결과로 경험한다. 다시 말하면 나와 분리되어 나는 초월하거나 나와 대립된 저 편에 있는 무엇으로 경험한다. 근본적으로 행동의 주체는 나 자신이 아니고, 내적 혹은 외적 힘이 나를 통하여 행동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활동의 결과에서 떨어져 나온다.

- 소외되지 않은 활동의 경우, 나는 나 자신을 행동의 주체로 체험한다. 자발적 활동 -> 생산적 활동이다. 

 

p.137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능동성과 수동성(행하는 것과 감수하는 것)을 정신생활의 두 가지 근본 측면으로 구별한다. 능동성의 첫째 기준은 행위가 본성에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p.142 나의 태도가 나의 성격에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성격구조, 즉 내가 드러내는 태도 이면의 진정한 동기가 나의 참존재이다. 

 

p.147 우리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 뿌리 깊이 타고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표출하려는 욕구, 활동하고자 하는 욕구,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 이기심의 감옥에서 빠져나가려는 욕구등...

 

p.147 헤브는 행동과학의 유일한 문제는 활동의 규명이 아니라, 비활동의 규명이다하며 보편적인 공식을 요약했다. 
 1) 동물의 행동관찰
 2) 신경생리학 실험
 3) 유아의 행동
 4) 학습태도
 5) 작업태도
 6) 사회적 및 정치적 일상생활에서 제공되는 수 많은 자료

 

p.154 인간내부에는 두가지 성향이 있다는 결론을 허용한다. 그 하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기 것으로 하려는 성향으로서 궁극적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뻗어나온 힘이다. 다른 하나는 존잰하고자 하는, 나누어가지고 베풀고 희생하려는 성향으로서 인간실존의 특유의 조건에서, 특히 타자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신이 고립을 극복하려는 타고난 욕구에서 나온 성향이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이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있으므로 사회의 구조와 가치, 그리고 규범은 두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한쪽을 우세한 것으로 보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소유지향, 즉 소유적 실존양식ㅇ르 조장하는 사회는 인간의 전자의 잠재성에 근거하며, 존재와 나눔을 장려하는 사회는 인간의 후자의 잠재성에 근거하낟. 우리는 이 두 잠재성 가운데 어느 것ㅇ르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의 결정은 그 어느 한쪽 성향으로의 해결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p.157 소유와 존재의 그 밖의 측면

- 안정 : 불안정 

가진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에서 생기는 불안과 걱정은 존재적 실존양식에는 없다. 존재하는 자아 = 나일뿐 소유하고 있는 것= 나가 아니라면어느 누구도 나를 앗아가거나 나의 안정과 나의 주체적 느낌을 위협할 수가 없다. 

-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나의 안정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나 자신의 내부에 있다.

 

- 연대감 : 적대감

소유하겠다는 욕망 없이 기쁨을 만끽하는 예는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소유적 실존양식에 근거한 인간관계는 경쟁심, 적대감,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진다. 소유적 실존양식에서의 적대감의 요소는 소유라는 특성 자체에 근거한다. 탐욕은 소유지향의 결과이다. 

 

- 기쁨 : 쾌락

생명은 기쁨을 유발시킨다. 쾌락이란 능동성을 요하지 않는 욕망의 충족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스피노자 " 기쁨이란 인간이 부족한 완성에서 보다 위대한 완성으로 가는 통로이다. 반면 슬픔은 보다 위대한 완성에서 부족한 완성으로 가는 통로이다" 기쁨은 자기실현이라는 목표를 향해가는 도상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체험이다.

 

- 죄와 용서

불복종이라는 의미에서의 죄는 권위주의적 구조, 즉 소유지향적 구조의 구성요소인 반면, 존재지향의 비권위주의적 구조에서의 죄의 개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소유적 실존양식, 즉 권위주의적 구조에서의 죄는 곧 불복종이며 회오->징벌->새로운 굴종으로 특징지어진다. 존재적 실존양식, 즉 비권위주의적 구조에서의 죄는 미결의 격리상태(소외)이며 이성과 사랑을 완전히 펼침으로써 , 하나가 됨으로써 극복된다. 죄를 불복종으로 보는 견해와 소외로 보는 견해는 완전히 대립되는 견해이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 : 삶에의 긍정

 

- 여기, 지금 - 과거, 미래

존재적 실존양식은 오로지 지금, 여기에만 있다. 반면 소유적 실존양식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있다. 

소유적 실존양식의 인간은 그가 과거에 축적한 것 (돈, 땅,명성, 사회적 신분, 지식, 자식, 기억 등)에 묶여 있다. 그는 과거를 돌아보며, 과거의 느낌들을 추억함으로써 과거를 느끼려고 쓴다. 그는 바로 과거 자체이다. 그는 나는 과거의 나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 우리는 시간을 존중하되 시간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유적 실존양식이 지배할 때는 시간에 대한 존중이 굴복으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