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설교 ] 공감능력
2008년 카네기멜론 대학교와 MIT 대학교 심리학자들이 성과가 좋은 팀은 어떠한 팀인지 공동연구를 했습니다. 연구결과를 보면 팀워크와 지능지수는 성과와 아무 상관이 없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었습니다. 높은 공감능력을 보여주는 팀원이 있을 때, 팀은 높은 성과를 낸다는 겁니다.
‘공감’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힘입니다. 지금처럼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하려면 ‘공감’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공감능력’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감은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나눌 때 주어집니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나눌 때 주어집니다. 기쁨이 아니라 슬픔을 나눌 때 주어집니다. 사회심리학자인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런 말을 할 때 ‘공감’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이해해, 나도 그런 적 있어", "나한테도 그런 일 있었어", "괜찮아, 네가 정상이야", "그게 어떤 기분인지 나도 알아"
그런데 인간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에 다른 누군가에 대해 쉽게 ‘공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지만,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경험되지 않은 것을 ‘공감’하려고 할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않고, 공허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내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봅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의심했지만, 이제는 말씀 앞에서 내 생각, 마음, 감정을 의심하고 돌아봅니다. 주신 복음 앞에서 옛 사람과 치열한 영적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고백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돌아보다보면 주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감능력’입니다. 사람들이 다양해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합니다. 로마서 3:10절은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고, 다양해 보이는 사람이 있어도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똑같습니다. 그러기에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돌아보다보면 나의 연약함이 보이고, 부족함이 보이고, 죄의 습관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토록 싫어하고, 비난하는 저 사람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임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나 역시도 똑같은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거기에서 ‘공감’은 시작됩니다.
그러기에 복음 앞에 치열하게 응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난할 수 없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그 사람의 실패가 나의 실패이기도 하기 때문이며, 그 사람의 죄악이 나의 죄악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죄와 비난 대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공감’입니다.
복음 앞에서 치열하게 옛 사람과 싸우십시오. 주신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십시오. 하루 하루를 복음 앞에서 응답하십시요.
어느 순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어느 순간 많은 이들이 나를 통해 위로받고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어느 순간 축복의 통로로 서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될 겁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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