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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역사(원제 : 죽음 앞의 인간 - 필립 아리에스 著) 진중권 (「미학 오딧세이」저자) |
열심히 죽음을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밤에 잠자려고 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곤 했다. 낮에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탐욕스럽게 온갖 욕망과 가치들의 실현을 위해 수고하다가, 밤이 되어 문득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면 그 모든 것이 그렇게 허망할 수가 없었다. 죽음은 애써 쌓은 것, 애써 모은 것, 애써 배운 것을 한 순간에 무로 되돌려 버린다. 현자 에피쿠로스는 이 공포를 이기는 계략을 갖고 있었다. "죽음은 우리를 건드릴 수가 없다. 왜? 우리의 숨이 붙어있는 한 죽음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고, 죽음이 찾아오면 더 이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장난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그의 말대로 죽음은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지 모르나, 그렇다고 또 우리를 그냥 놔두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죽음을 연상해야 했을까? 그 시절 나는 베를린의 어느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기숙사 옆으로 담장 하나를 끼고 병원이 있었는데, 가끔 거기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와 잠을 깨곤 했다. 창 밖을 내다보면, 누군가가 병원 뜰 바닥에 주저앉아, 때로는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통곡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를 잃은 이들의 몸부림. 문화가 달라도 이것만은 공통인 모양이다. '죽음'이라는 낱말은전염성이 있어, 남의 죽음도 필연적으로 나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아니, 남의 죽음이 모종의 주술적 효과를 통해 내 몸으로 옮겨오는 모양이다. 밤마다 이 요란한 행사를 여러 번 반복하는 가운데 어느 날 문득 뭔가 특이한 점을 깨달았다. 그렇게 바닥에 누워 요란하게 슬퍼하는 사람들의 머리칼이 이상하게도 대부분 검은 색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마디로 그렇게 파토스를 표출하며 요란하게 슬퍼하는 이들은 독일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외국인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베를린 영화제에는 마침 한국에서 장례문화에 관한 영화가 두 편 출품되었다. 제목이 <학생부군신위>와 <축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이 온통 코메디를 방불케하는 사건으로 얼룩지고, 심지어 조문객이 킬킬거리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장면이 그곳 사람들에게 대단히 생소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서양의 장례식은 슬픔과 애도라는 단 하나의 코드에 따라 진행되는 반면, 우리의 장례식은 요란한 슬픔의 통곡과 즐거운 웃음과 노랫소리가 함께 어울어지는 복합적 감정의 코드에 따른다. 서양의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고, 우리의 장례식은 죽은 자와 산 자 모두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란한 통곡으로는 죽은 자를 기념하고, 요란한 웃음으로는 산 자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복합적인 구조...
죽음 앞의 인간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사실은 문화를 초월한 진리이나,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은 이처럼 문화마다 달라진다. 또한 동일한 문화 내에서도 시대마다 달라지곤 한다. 그리하여 '죽음'도 자연스레 제 역사를 갖게 되는 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은 서구 기독교 문명이라는 특정한 공간 속에서 바로 이 죽음의 역사를 추적한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가진 죽음의 관념이 시대와 역사를 초월한 보편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리에스에 따르면 죽음에도 변화가 있고 역사가 있어, 그 동안 다섯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왔다고 한다. ① 중세초의 '우리의 죽음', ② 중세말의 '나의 죽음',③ 바로크 시대의 '멀고도 가까운 죽음', ④ 낭만주의 시대의 '타인의 죽음', ⑤현대의 '반대물로 전화한 죽음'이 그것이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중세 초기에는 인간들이 공동체의 품속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시기의죽음을 아리에스는 '우리의 죽음'이라 부른다. 이 시절 한 사람의 죽음은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사건이었고, 이 공동체의 품속에서 개인은 외롭지 않게 죽을 수가 있었다. 아직 인간들은 공동체에 함몰되어 있어 자신을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 했기 때문에 자기의 죽음에 그렇게 큰 공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죽음은 자기의 소멸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더 큰 자기의 일부의 소멸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때 사람들은 신앙공동체에서 보장하는 영생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에 언젠가 몸을 가지고 다시 부활하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죽음, 즉 공동체의 밖에서 객사하는 것이나 천국행을 위한 임종성사를 받을 틈도 없이 갑작스레 죽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중세가 끝나갈 때에 이르면 공동체는 점차 해체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사회성원들은 점점 더 개인주의화해 간다. 죽음을 길들이는 수단이었던 공동체의 끈이 약해질수록 죽음을 외로운 개인으로 맞아야 할 인간들의 공포는 점점 더 커진다. 물론 죽는 자들에게 영생을 약속해 주었던 기독교 신앙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종교가 점차 내면화되면서 자기의 외적 행위가 아니라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사람들은 '과연 내가 영생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고, 이 불안감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욱더 크게 만들었다. 이 시기에 '죽음의 춤', '죽음의 승리', '3인의 생자와 3인의 사자'와 같은 끔찍한 마카브르 장르(=시체를 묘사한 그림)가 유행한 것은 바로 이 불안감의 회화적 표현이었을 게다.
<죽음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있는 곳은 역시 바로크 시대를 다룬 부분이다. 이미 인간이 원자화한 이상, 이 시기에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커다란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묘하게도 죽음에 대한 과학적(?) 사랑이 자라나고 있었다. 해부학 열풍이 그것이다. 이 시절 웬만한 교양인의 집에는 해부학 실험실이 갖추어져 있었고, 대학에서는 날마다 해부학 공개강의가 이루어졌고, 오늘날 청춘남녀들이 영화관에 가듯이 당시의 연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해부장면을 구경하러 다녔다고 한다. 한편 성당에는 성자들의 잔혹한 순교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어, 신도들에게 은밀하게 묘한 사도매저키스적 쾌감을 주고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시체와 그것의 관능성을 은밀히 선호하는 이 모순적 태도를 아리에스는 '가깝고도 먼 죽음'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낭만주의 시대에는 죽음의 관념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죽음조차도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이라는 안경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다. 생각해 보라. 사랑하는 이의죽음은 고통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달콤함이 있지 않은가. 어릴 적 죽은 자기의 시체를 둘러싸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서럽게 우는 장면을 연상하며 묘한 쾌감을 느낀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죽음을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더 이상 그것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외려 동경의 대상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원래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달콤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시체는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바로크 시대에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낸 네크로필리아, 즉 시체선호가 이제 노골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시기에 시대에 죽음은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고, 구차하게 살아남은 자의 삶은 고통스럽고 추한 것이 된다. 한 마디로 죽음의 역사에 혁명적인 가치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이 혁명의 본질은 '죽음과 악의 연관'이 끊어진 데에 있었다.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죽음은 아담의 원죄로 삶에 덧붙여진 이물질이었다. 원래 인간은 죽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인해 비로소 죽게 된 것이다. 만약에 죽음이 생물학적 필연성이 아니라 그저 도덕적 행위로 삶에 덧붙여진 이물질이라면, 그것은 도덕적 회개를 통해 다시 삶에서 떼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서구인들이 죽음에 대항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이 추악한 죄의 결과라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천여 년을 지탱해온 종교적 전략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화려한 수사학을 동원한 낭만주의의 미학적 전략이 들어선다.
낭만주의적 전략은 신앙이 사라진 시기에 인간이 종교의 힘을 빌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최초의 시도이자 마지막 시도였다. 하지만 시적인 수사법을 동원한 낭만주의의 이 미학적 전략은 산문적인 산업사회에 사는 현대인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온갖 수사에 닳고 닳은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아름답게 꾸미는 낭만주의의 수사학에서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촌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실제로 오늘날 죽음에 대한 낭만주의적 수사는 유행가 가사나 선데이 서울과 같은 잡지를 위한 키치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죽음에 대항하는 전통적인 종교적 전략이 실패하고, 이어 낭만주의의 미학적 전략마저 사라진 오늘날 우리 현대인은 그 어느 시대보다 죽음을 끔찍한 것으로 경험한다. 이 공포를 극복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저 죽음을 잊으려고 할뿐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터부가 되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죽음은 이제 '반대물로 전화'했다.
죽음의 '터부'는 침묵의 수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죽음에 관해 침묵하라는 사교상의 규칙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실은 우리 사회 자체가 제도적으로 죽음을 감추고, 그 냄새를 없애며, 그 시체를 깜쪽같이 처리해 버리고 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한다. 죽어가는 자들은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병원의 네 벽에 격리되어, 기껏 가족 몇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때로는 가족들조차 없는 사이에 쓸쓸하게 죽는다. 그리고 그렇게 외롭게 죽은 자의 시체는 냄새 하나 없이 어디론가 빼돌려져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그리고 깜쪽같이 처리된다. 사회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과거에 죽음을 담당하던 사람이 사제였다면, 낭만주의 시대에는 그것이 시인이었다면, 이제는 의사가 그 일을 넘겨받는다. 죽음을 이길 전략이 없는 곳. 그곳에서 죽음의 공포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망각'일 게다.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는 이미 현대의 고전이 되어, 오늘날 죽음에 관해 쓰여지는 모든 책들은 이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역시 우리말로 번역된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죽어가는 고독>은 아리에스 책에 대한 부분적 비평을 담고 있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중세초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아리에스의 주장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말하자면 중세의 영웅담이나 기사문학에 나오는 얘기들은 당시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하기보다는 이상을 담고 있기에, 그것을 현실에대한 기술로 읽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하긴, 영웅의 속성 중의 하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그것은 영웅이 되고 싶은 자들의 이상일 뿐, 영웅이 되지 못한 자들의 현실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지적과 아울러 엘리아스는 현대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사회학적 설명을 담고 있어, 아리에스의 책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 어떻게 이길 것인가? 사람마다 다양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시체는 지금 원통형의 냉동고에 담겨 언젠가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부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몸의 부활을 믿는 중세초 전략의 현대적 버전이다. 한국의 교회에 가면 육신은 썩어 없어져도 영혼의 구원을 믿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아직 중세말의 전략이 그대로 살아 있다. 한편 인터넷에 횡행하는 자살 사이트에서는 죽음에 대한 낭만주의적 전략이 키치화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도 서구화되어 요란한 공동체의 축제로서의 죽음은 거의 사라졌다. 가족의 죽음마저도 집이 아닌 병원에서 위생적으로 깨끗하게 맞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나의 전략? 나는 죽음을 finito(=끝)로 본다. 화룡정점의 순간, 즉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삶이라는 작품이 완성에 도달하는 어떤 순간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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