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주제별 이야기/세계관&이야기

세계관을 적절성에 둬야 더 큰 성공의 길이 열린다

꿈꾸는꼬목사 2021. 6. 24. 18:24

유기적 세계관의 소비자들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는 그의 저서『컨버전스 컬처』에서 영화 제작자들의 인터뷰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경험 많은 한 영화작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적에는 스토리를 먼저 세웠다. 좋은 스토리 없이는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속편이 만들어지면서는 캐릭터를 먼저 세우게 된다. 좋은 캐릭터 없이는 여러 개의 스토리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를 먼저 세운다. 복수의 등장인물과 복수의 스토리를 복수의 미디어를 통해 이어가려면 세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는 서사의 핍진성보다는 캐릭터의 매력을, 캐릭터의 매력보다는 세계관의 적절성을 우선순위에 둬야 더 큰 성공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비교가 될 만한 것으로 20여년 전 가장 영향력 있었던 소년만화 <드래곤볼>이 있다. MCU에서는 신묘한 힘을 가진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아 손가락을 튕기면 소원이 이뤄진다. 이것은 공 7개를 모으면 용이 나타나 소원을 들 어주는 <드래곤볼>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드래곤 볼>은 만화 원작의 연재가 늘어질수록 주인공과 동료들이 더 강한 적을 만나게 되는 캐릭터 중심의 구조여서 정작 드래곤볼 그 자체는 전체 이야 기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이를 두고 팬들은 작가의 설정이 너무 헐겁 다고 비판하곤 해왔다.

그에 반해 MCU의 그 모든 작인은 (적어도 현재 시 점까지는) 우주적 기원을 담은 인피니티 스톤의 무한한 역량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적어도 이 세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우연의 산물로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게 된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도,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 잔치도 아니다. MCU는 관객들에게 하나의 세계를 선물했다. 그 자신이 <스타워즈>, < 인디애나 존스>, <백 투 더 퓨처> 등 시리즈물의‘덕후’였던 케빈 파이 기는 마블 코믹스 영화화에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유기적인 세계관의 창조자가 되었다. 이 같은 맥락은 다분히 극적인 측면이 있다. 원래 전통 적인 관객들은 작품의 핍진성을 중요시해왔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는 날조된 것이며 관객 자신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판타지 서사들이 있어오기는 했지만 그런 작품들은 정전(canon)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을 뿐더러 대중적으로도 선호되는 부류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음지에서 말 그대로 하위화된 대 중예술, 즉 오늘날 우리가 서브컬처(sub-culture)로서 암약할 뿐이었 다.

그런데 오늘날 오타쿠화된 한국 대중들은 기꺼이 허구의 세계를 예찬 한다.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내포한다. 하나는 오늘날 대중들이 문화콘텐츠를 통해 세계관을 소비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창조 된 세계에 몰입할수록 그 세계의 내적 완결성이 점점 중요해진다는 것이 다.13 여기서는 후자의 맥락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MCU처럼 여 러 편의 작품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우 그 창조자가 신이 아닌 이상 서사적 허점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오타 12 이미 한국의 문화 소비 부문에서 새로운 지배소(dominant)는 오타쿠적 소비로 변모하고 있다. 대량 소비에서 오타쿠적 소비로의 소비 양식 변화에 대해서는 졸고, 「플랫폼과‘소중’: 생산과 소비의 경 합이라는 낡은 신화의 한계상황」, ≪문화/과학≫ 93호, 2017을 참조. 13 일반적으로 일본 서브컬처에서는 세계관 소비가 캐릭터 등을 중심으로 하는‘데이터베이스’소비로 대체된다고 보는 의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즈마 히로키(2007),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 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문학동네. 그러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MCU 열광이 가리키는 것처럼 ‘유기적’세계관에 대한 선호가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현장이슈 쿠적 대중들은 공학적인 문예소비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이 공백을 도무 지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들은 창조된 세계에서의 내적 완결성 에 무서우리만치 집착하는 경향마저 내비친다. 일종의 판타지적 리얼리 즘이랄까, 만약 자신을 매료시킨 작품에 내적 완결성이 깨진다면, 그들은 기꺼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구멍을 메우는‘자유노동’(free labor)에 복무한다. 그리하여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문화적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파이기가 한국을 두고 중국 다음 가는 큰 시장이라 했을 때, 여기에는 오늘날 영화산업을 둘러싼 트랜스미디어(trans-media) 양상이 포함되어 있음이 틀림없다.14 그런데 여기서 진짜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MCU라 는 유기적 세계관을 소비하는 양상이 모종의 관객성 변동을 함의하는 측 면이 있다는 사실에 있다. 작품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작품을‘감상’하 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들의 리뷰와‘리액션’15은 또 다른 2차 생산물이 된 다. 뿐만 아니라 작품들에 뿌려진 떡밥을 통해 각종‘뇌피셜’을 쏟아내면 서 막대한 규모의‘스포일링 게임’을 형성해나간다.16 그리고 무엇보다 주 목할 만한 점은 이렇게 생산과 소비의 경계를 넘나드는 관객들의 창조적 인‘덕질’이 이제는 지극히 평범한 소비 패턴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는 사실일 것이다.

 

출처 : 한국사람들은 왜 마블(MCU)에 열광하는가? - 포스트-냉전, 어셈블, 세계관
김성윤(문화사회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