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장례식이 있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출장 가던 중 비행기에서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유가족은 고인의 아내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출장 다녀오겠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나간 남편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기에 그 슬픔은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모든 장례예배가 진행될 때마다 유가족과 교회 가족들은 다같이 울음바다였다. 장례예배를 준비하는 나 역시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하나님께 화가 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데, 가족들은 어찌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장례절차가 진행될 때마다 드려지는 예배 가운데 내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전하고, 또한 말씀을 전하면서도 오히려 내 마음은 상했다.
대형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는 성도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성도들이 그렇게 깊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고, 좋은 모습, 드러내고 나타낼 수 있을 만큼만 공유하기 때문이다. 기도제목을 나눌 때도 깊이 들어가지 않고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나눴다. 그러기에 그것이 성도들이 겪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예전 교회 권사님들이 2년 정도 예배를 함께 참석해주셨다. 다시 본 교회로 돌아가실 것이지만 같이 예배를 드리시기에 교회 양육과정을 함께 공부했다. 복음을 나누면서 지난 몇 년간 함께 하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분들의 아픔과 눈물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가 다 마치고 그 분들에게 머리숙여 진심으로 사과했다. "권사님! 죄송합니다. 권사님들이 이런 아픔과 눈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제가 목회를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사님들의 마음은 하나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교회를 개척하고 성도들을 가까이 만나면서 너무 당황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학, 경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과 상황들이 너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건, 신문기사에서나 알 수 있었던 상황들이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줘야 한다는 무식한 부담감으로 그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내 자신도 이해되지 않고, 상대도 공감할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했다. 돌아보면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미안해진다.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삶으로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내 머리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가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 교만이며, 그것을 성도들에게 완벽하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도 내가 하나님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내 머리에서 삶으로 더 깊이 다가왔다. 머리에 있던 말씀이 가슴과 삶으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너무나도 초라한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 해석하려고 하지도 않고, 무리하게 답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성도들의 아픔의 자리에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며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 않은 상태로 가슴에 묻어둔다. 그리고 주님 뵙는 날, 가슴에 묻어둔 것을 하나하나 꺼내어 여쭤보련다. "하나님! 그때 왜 그러셨어요?"
고형욱 목사 / 꿈꾸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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