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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주신 기회임을"

Part 5 Mosaic Life/사람공부

"인간이해와 상담" 래리크랩

꿈꾸는 꼬목사 2020. 11. 29. 09:21

 

 

 

p.25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 미래를 주관하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다 신중하게 붙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p.26 심리학자들은 그들은 죄가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 성품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드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경 견해를 완전 무시한 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대속 사건이 전혀 필요치 않은 해결책들을 제시합니다.

p.29 이 책을 쓰는 나의 의도는 여기 있습닏. 얄팍함이나 현실과의 유리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는 단순하지만 아주 근본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초를 놓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심리 장애라는 것이 하나님을 등진 삶의 추구에서 비롯된 죄성의 결과라는 사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p.29 성경적 상담이란 본질적으로 세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1) 올바른 접근하기만 한다면 성경은 상담가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의 기본 틀을 제시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2) 모든 심리 문제, 즉 기질에 관계되지 않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에 겨롴 없어서는 안될 자원들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3) 하나님은 인생 문제들에 대한 당신의 답을 이해하고 또 이해한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장으로, 성경적인 관ㄱ 안에서 함께 살아갈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제 1부 성경의 충족성
p.40 지식을 얻는 네 가지 방법 : 직관, 이성, 경험, 계시

p.51 계시의 기본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과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모든 사고의 전제요 배경이 도어야 한다.

p.52 성경적 상담의 깊은 의미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연구 방식 중 책 두권 견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시를 두 권의 책으로 이해하는 이 견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성경이라는 두 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계시를 바로 알려면 두 다 가지를 다 고웁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리학과 신학을 통합하려는 접근입니다.

p.58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p.60
1)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당신을 계시해주시는 목적과 자연을 통해 계시해주시는 목적은 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는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성경은 생명 얻는 길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자연은 삶을 위한 교과서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는 책은 성경입니다. 
2) 성경의 명료성
3) 자연을 통해 배우는 것 속에는 죄의 결과가 배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4) 성령께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는 약속
* 다른 이유도 있지만, 성경의 목적과 명료성과 순결성, 그리고 성경을 연구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신 약속.

p.67 성경의 권위 문제가 정리되면, 그 다음에는 성경의 충족성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합니다.

p.84 성경의 충족성이 과연 정확한 사실이라면 이제 우리느에게는 성경을 다루는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효과적인 상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성경 한 장 한 장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p.89 적어도 프로이드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밑에 숨어 있는 내적인 원인을 보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역동성을 이해해야 한다. 

p.93 맞다. 성경은 ㅇ니생 모든 문제들에 대해 답변하고 있는 충족한 책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이 그런 모든 온당한 질문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상담 분야에 관한 성경의 충족성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가정을 토대로 한다. 바로 성경의 자료에는 인생의 모든 관계적인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어 주는 원리가 암시되어 있으며, 그것은 기존의 교리 내용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2부 인간이해

p.113 내 삶이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 인생의 방향으로 향하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하는 법을 알고자 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왜 우리에게는 그토록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p.114 사람, 문제, 해결책

p.119 세 가지 기본 모델이 있다. 
 1) 역동모델 :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내면의 과정들이다. 무의식적이다. 문제를 기저에 깔린 질병의 한 증상으로 본다. 문제의 숨겨진 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2) 도덕모델 :  도덕 모델의 상담가들이 보기에 인간이란 혼란에 빠진 존재이기보다는 고집을 내세우는 존재입니다. 고집스런 의지가 있다. 도덕 모델 상담에서는 과제를 부여하는 기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3) 관계모델 :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인간 관계에서 문제를 찾는다.

해석: *역동모델 : 내적인 이유가 있어서 이런 모습을 보인다.
*도덕모델 : 내가 원하는 것이 있기에 그런 모습을 보인다.

p.127 우리는 누구인가?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다.

p.129 인간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나의 출발점은 이것입니다. 즉 사람은 타락한 형상 보유자라는 사실입니다. 고귀함(형상)과 부패성(타락)을 동시에 가진 존재인 것이다.

p.131 하나님의 형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수많은 견해.... 대리지배, 도덕성, 무도덕성, 유사성
 1) 대리지배 : 
 2) 도덕성으로 본 형상 : 형상이 없어진게 아니라 훼손되었다.  인간의 내면에 아직까지는 하나님 마음에 들만한 좋은 점들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3) 무도덕성으로 본 형상 : 저속한 욕구가 고상한 이성과 충돌하게 될 때 올바른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타락때, 그는 이 특별함 힘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육신의 정욕에 지배당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도덕적 순결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그 특별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얻어야 될 것은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새로운 의의 위치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저속한 욕구들을 통제 해줄 특별 은혜입니다. 

p.134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보시기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죄를 지음으로써 타락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에게는 용서와 아울러 의의 선물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의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선행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존재로서의 새 신분을 얻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선행은 단지 새 신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찬 반응일 뿐입니다. 

4) 유사성으로 본 형상 :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지속적인 인격의 특질들을 말한다는 것과 바로 이 특질들이 우리가 비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라는 말의 의미를 규정해준다는 것입니다. 

p.139 인격적이라는 것....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인격의 특징들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기본 정의가 될 것입니다. 


 1) 깊은 갈망 : 인격적인 것을 깊이 갈망하는 기능
 2) 평가적인 사고 : 현상을 이성적으로 평가하는 기능
 3) 능동적인 선택 : 선택한 방향을 의지로 추구해가는 기능
 4) 감정적인 경향 : 자신의 세계를 감정적으로 경험하는 기능

 

* 네 가지 요소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우리가 깊이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당신의 역량을 완벽하게 발휘하시기 위해서 그 누구도 그 어느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우리는 전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의 역량을 제대로 , 아니 조금이라도 발휘할 수 있으러면 우리는 반드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물리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면이나 우리는 스스로 충족한 존재가 아닙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죄의 본질은 바로 이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ㅣ. 능력도 없으면서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보겠다고 하는, 교만하고도 어리석은 주장입니다.ㅣ 

* 하나님은 갈망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독립적인 인격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갈망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느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의존적인 인격입니다. 

p.155 자기를 살피는 것은 전적으로 의존을 배우기 위해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의 그릇된 자기 신뢰는 철저히 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의존적 신뢰가 마음을 그는 대안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p.156 자신을 살펴볼수록 의존적인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기를 쓰고 회피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의존성을 인정하면 자신의 절대 무력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p.157 내면을 살펴보는 일에 있어서 내가 그 길잡이로 깊이 의지하는 성경개념이 두가지 있습니다. 속 깊은 곳에 대한 개념과 우리 영혼의 깊은 갈망이라는 개념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배'는 텅빈 속마음이라는 뜻이다. 비어 있으면서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가장 중심되는 부ㅜㅂㄴ이라 할 수 있다. 이 텅 빈 속마음이 얼만큼 채워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깊은 차원의 온전함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p.160 
1) 모든 행동은 정해진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ㅣ.
 2)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우리 속 깊은 곳을 채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방향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그쪽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다.

p.160 성경적 상담은 의존을 거부하는 인간의 교만한 부정을 직시합니다. 성경적 상담은 겉치레뿐인 독립의 허물을 벗기고, 내담자로 하여금 인간은 절대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성숙을 맛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자기 방식으로 만족을 추구하던 것을 완전히 포기한다는데는 두려움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다른 누군가 개입하지 않는 한 극도의 공허감을 어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무력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불확실성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운명을 자기가 주관하는 쪽을 선택하려 듭니다.  

p.161 우리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적인 문제들에게는 도덕적인 뿌리가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감정 문제는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죄의 산물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무의식적인 우리의 끈질긴 고집이 잇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텅 빈 속 마음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방식대로 만족을 찾아보겠다는 고집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제의 도덕적  뿌리를 덮고 있는 포장지를 벗겨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 되는 부분들을 놓치고 맙니다.

p.161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마음속을 살펴보았고, 그 속에 있는 '텅 빈 속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만족을 향한 갈망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겸손히 주님을 의뢰하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교만하게 자기 재주를 믿고 만족을 찾아나서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질문이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텅빈 속마음이 가진 그 공험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 영혼의 갈급함이라는 개념입니다.ㅣ

p.162 내 힘으로는 안된다는 뼈저린 인식이 있은 후라야 하나님을 알고 누리는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입니다. 

p.164 무엇을 향한 갈망인가?
- 관계를 갈망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이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존이 필요하다/.
- 관계에 대한 깊은 갈망을 한 문장으로 간추려보면, 인간은 누구나 나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면서도 여전히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원합니다. 
- 중요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을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미있는 일의 적임자가 되고 싶은 갈망, 내가 이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며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하는 갈망입니다. 

p.175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부산물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