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이야기해야할 때가 왔다.
그렇다면 '존재교육'과 '성품교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성품교육'은
기독교신앙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존재교육'은
기독교신앙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교육이다.
다른 측면으로 이야기를 해보면
성품교육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좋은 '습관'이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성품연구가 이영숙씨는 성품과 성품교육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개인의 생각, 감정, 행동이 총체적으로 표현되는 성품은,
일반적으로 좋은 성품이라는 긍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된다.
좋은 성품이란 "갈등과 위기 상황에서 더 좋은 생각, 더 좋은 감정, 더 좋은 행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항상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결단력"이다.
좋은 성품은 우연히 갖거나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성품은 삶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배우고 훈련해야 얻을 수 있는 인격적 결단이므로,
배우고 훈련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놓칠 수 밖에 없다.
좋은 '습관'을 훈련하는 '나'이다.
아무리 좋은 '습관'을 훈련해도
그 훈련을 받는 '나'가 잘못되어 있다면
그 훈련은 잘못된 교육과 훈련이 된다.
친절이라는 성품을 훈련받는데
왜 우리 사회에서는 '분노'가 가득할까?
사랑이라는 성품을 훈련받는데
왜 우리 사회는 '외로움'으로 가득할까?
감사라는 성품을 훈련받는데
왜 우리는 사회는 '저주'가 가득할까?
그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어그러져 있고 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받는 '나'에 대해서 먼저 정리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과 외면의 이중성이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그 분노를 자기 자신에게 쏟으며 자살이 늘어나고...
그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쏟으며 살인이 늘어나고....
지금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존재교육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라는 존재에 맞는 생각, 감정, 행동을 교육하는 것이다"
존재교육은 크게 4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나'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맞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맞는 삶의 모습을 행동으로 습관화해야 한다.
존재교육에서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이다.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거기에 합당한 생각, 감정, 행동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존재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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