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BOOK SUMMARY

생각하는 신앙 by 박영선

꿈꾸는꼬목사 2019. 12. 19. 19:29

 

p.13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신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제와 내용이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학의 원리는 계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이에 대해 일러주시는게 계시입니다. 계시는 지식과 정보의 노출 이전에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른 결과입니다. 

p.17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원한 목적을 두고, 일을 추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만큼 이 일에 온 힘을 쏟고 계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계시의 특성입니다. 

p.19 성경은 설명하는 대신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이를 성취해가는 당신의 선의를 신뢰하고, 그에 따르는 순종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에 하나님의 정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우리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p.21 믿음이란 무엇인가?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p.25 기독교과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계시'이다. 기독교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제사는 무엇인가? 거룩한 그 분을 만나기 위해 나를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의 분노를 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p.33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만 고백이라는 방식으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계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 그에 따른 하나님의 요구로 꽉 차 있습니다. 권위가 넘칩니다. 전하려는 말을 나열하고 타협하는,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늘어놓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p.43 우리가 계시된 내용을 인식하려면 이성을 통할 수 밖에 없는데, 이 이성이라는 녀석이 통로나 운반 수단으로 끝나지 않고 스스로를 사상화하는 브릇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스로를 사상화한다지만, 그 결과 폐쇄된 사고 체계를 구축하고 고집하는 습관도 같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성이 계시된 내용의 전체 균형과 조화를 깨는 짓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성은 언제나 계시된 전체 내용 중에 일부를 고집하고 한쪽만을 확대 해석해 폐쇄적이고 단원론적인 사고 체계를 굳히고 싶어합니다. 이를 피하려는 시도가 개방 체계입니다. 

p.46 이성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어떤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포착하고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p.47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이라는 기관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인식시키기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모양으로 스스로를 나타내고 계십니다. 바로 성경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문자 안으로 들어오셨지만, 그 문자나 이성은 초월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고 드러내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이 그 분을 펼쳐 보이셨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지를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p.56 계시의 내용이 초월에 관한 것이라 해도 합리성이라는 껍데기를 입지 않으면 이성은 이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성이 계시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그 내용이 가시적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다가오지 않으면 이성은그 내용물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계시가 우리에게 인식되기 위해 어떤 형태를 취한 것과 원래 우리 이성의 한계 내에 있는 것들을 혼돈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p.62 계시적 사고(개방체계), 이성적 사고 (폐쇄적체계)

p.66 중세기독교인들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접목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콜라 철학입니다. 헤브라이즘이 진리와 절대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확인해주고 싶었던 겁니다. 스콜라 철학도 목적론을 과도하게 도입한 결과입니다. 

p.69 죽어 있는 한 영혼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면 어떤 일이 먼저 일어납니까? 바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에게는 어떤 경험으로 나타납니까? 회개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p.74 성경의 계시는 보통 설명보다는 복종을 요구합니다.

p.79 철이 든다는 것은 자기 기분과 별개로 엄연한 사실 앞에 자신을 길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p.80 권위란 힘이나 진리이지만 독재성이 있는 힘과 진리는 아닙니다. 권위는 순종 또는 복종에 의해서만 인정이 됩니다. 권위는 힘이 아니라 내용 그 자체로 자신을 증명합니다. 권위란 없던 무언가가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위입니다. 

p.83 권위가 복종을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진리이며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와 사실은 납득되기 전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 자칫 권위가 독재로 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 납득되기 전에 따르도록 요구받는가하면, 진리와 시실들이 초월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이라는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p.87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누구에게 줄지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정당한 자유입니다. 바로 무엇을 위한 자유입니다. 

p.98 우리에게는 죄값이 아니라 징계이다. 깨뜨린 만큼 벌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가르쳐 행실을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 사람을 고치려는 것이지 잘못한 만큼 맞으라는 것이 아니다.

p.103 초자연주의에서 생기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뜻을 펼치시고 영적 간섭, 즉 섭리를 행하시는데 자연이라는 영역에서는 힘을 못 쓰시고 초월적으로만 일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오직 교회와 섭리에 의해서만, 그러니까 성직자에 의해서만 은혜의 시여가 가능해짐으로서 자연이 은헤와 게시의 영역에서 역할을 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주의에서는 초월의 영역마저ㅓ 제거한다. 오직 인간의 인과율만 남게 된다. 

p.111 로마카톨릭은 계시의 본질을 신비로 본다.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은 일반과 특별을 이제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야 할까? 바로 은혜이다. 은혜까 이 둘을 어떻게 나누느냐, 바로 '죄'이다. 죄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드러내신 것이 특별 계시이며,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 일반 계시이다.

p.124 기독교에서 말하는 초월은 방법이 아니라 내용이다. 

p.126 은사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은사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도록 은혜와 긍휼로 간섭하고 계신데, 바로 그 표지가 은사라는 것입니다.

p.128 우리에게 계시는 그냥 전달하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먼저 항복하고 그 다음에 나아가서 그 내용을 증언하기 원하십니다. 

p.134 구약성경은 화면이고, 신약성경은 자막이라고 할 수 있다. 

p.140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그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대접해주시는가?

p.144 성경은 인격자의 발언이기에 해석이 필요합니다.

p.146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인간은 그 속이 변하지 않는 이상 외적으로 무슨 방법과 조건을 제시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결론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내적변화입니다. 우리를 새로 출생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지, 더 이상 설득하고 설명하고 잡아끄는 식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왜냐함녀 그것들은 모두 구약의 시도였기 때문입니다. 

p.218 신앙은 전 인격과 생애에 작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사랑의 대상이라는 인간의 지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