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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자가에 못 박힌 남자의 엽기적인 죽음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꿈꾸는꼬목사 2024. 4. 11. 18:50
정락인 객원기자입력 2024. 4. 6. 16:02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에는 높이 970m의 둔덕산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특이한 암석 지형의 폐채석장이 있는데, 1990년대 말 폐장된 후 방치돼 왔다.

2011년 5월1일 오후 인근에 살며 양봉업을 하던 주아무개씨(53)에게 양봉업자 부자가 찾아왔다. 이들은 주씨에게 양봉을 하기 좋은 장소를 물었고, 주씨는 폐채석장을 소개하며 함께 화물차를 타고 둔덕산에 올랐다.

비포장길을 약 600~700m쯤 올라가자 찻길이 끊겼다. 주씨와 양봉업자 아들이 차에서 내려보니 흰색 코란도가 주차돼 있었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채석장 쪽으로 올라가던 두 사람에게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저 멀리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서있었고, 마네킹 같은 것이 매달려 있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은 '누가 기도하려고 제단을 만들어놨나' 하면서 십자가 가까이 다가갔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은 마네킹이 아니라 성인 남자의 시신이었던 것이다.

시신은 괴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의와 하의는 탈의한 채 흰색 속옷만 입은 상태였다. 오른쪽 눈은 부어 감겨있고, 왼쪽 눈은 반쯤 뜨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관을 썼다. 목에는 노끈이 감겨있었다.

ⓒfreepik

십자가 설계도와 죽는 과정 상세히 남겨

양팔은 손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두 발은 십자가 앞쪽에 놓인 나무판에 못으로 박힌 상태였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시신 좌우에는 각목으로 만든 작은 십자가를 세우고 오른쪽 십자가에 손거울이 올려져 있고, 그 앞에는 탁상시계가 놓여있었다. 왼쪽 발 아래에는 식칼이, 그 왼쪽으로 청테이프로 감긴 줄이 있었다.

주씨와 양봉업자 아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혼비백산했다. 112에 신고하려고 했더니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아 곧장 산을 내려와 파출소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인근에서는 코란도 차량 외에 이 남성이 머문 것으로 보이는 텐트가 발견됐다. 차량에는 이불, 삽, 망치가 실려있었고, 텐트 안에는 전동드릴, 톱, 대못, 외국어로 적혀있는 글귀, 가시나무를 둥글게 만든 면류관 등이 있었다.

또 십자가를 만들기 위한 도면, 각종 목공 연장류가 나왔다. 특히 십자가 설계도와 십자가 처형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메모지가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십자가 크기와 필요한 부품, 못을 박을 순서와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었다.

당시 현장의 모습은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죽음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십자가가 있던 곳의 지형이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골고다 언덕과 유사하고, 옆구리 상처는 로마 병사들에게 창으로 찔린 상처를, 시신 옆에 있던 작은 나무 십자가는 예수의 양옆에 함께 못 박혀 매달렸다고 전해지는 2명의 강도를 나타냈다.

시신 앞에 있던 청테이프가 감긴 줄은 예수가 못 박히기 전에 로마 병사에게 당한 채찍 고문을 재현한 것으로 추정됐다.

텐트 안에 있던 외국어로 적힌 종이에는 각각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적혀있었는데, 이것은 로마 병사들이 십자가형을 당한 예수를 조롱하는 의미로 십자가에 걸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개신교계는 '십자가 사건'은 정통 기독교의 가치관을 벗어난 행위이며, 한국 교회와 상관없는 사이비 종교사상의 일탈행동이라고 규정했다.

2011년 5월1일 경북 문경의 폐채석장에서 50대 남성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장소의 전경 ⓒ연합뉴스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채 발견된 김씨의 천막에서 나온 메모. 메모에는 십자가 제작방법 등이 적혀있다. ⓒ연합뉴스

특정 종교에 심취한 택시기사로 확인돼

대체 이 기괴한 형태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대미문의 엽기적인 사건에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했다. 우선 현장 인근에 세워져 있던 차량의 번호판을 통해 소유주를 확인했다. 그는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택시기사 김아무개씨(58)였다. 그가 바로 시신의 주인공이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김씨는 창원에 계속 거주했고, 문경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김씨는 1990년대 부인과 이혼하고 자녀들과 함께 지내다가 연락을 끊고 혼자 살았다. 김씨가 특정 종교에 심취하면서다. 그는 어느 날부터 부활, 영생, 유체 이탈, 재림 예수 같은 말을 자주 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고 홀로 성경공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11년 4월초 생계수단인 개인택시를 팔고 혼자 살던 집도 정리했다. 그런 후 자동차 매장에서 '짐이 많이 들어가는 차'가 필요하다며 SUV 차량을 2500만원에 계약했다. 김씨는 새 차는 자기가 처음 운전해야 한다며 친동생과 같이 경기도 평택 출고장까지 가서 직접 몰고 왔다.

김씨는 4월8일에는 텐트 하나를 구입하고, 다음 날인 9일 문경으로 이동했다. 5일간 여관에 투숙하며 여기저기 뭔가를 사러 다니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4월14일에는 슈퍼에서 일주일치 식품을 구입하고 통신사 대리점을 방문해 자기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들러 예금계좌를 해지하고 전액 인출한 다음 900만원은 친형 계좌로 이체했다. 자투리로 남은 8만원과 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 털어 불우이웃 성금함에 넣었다. 김씨는 이렇게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

4월15일 김씨는 차량을 몰고 둔덕산 폐채석장으로 가서 인근에 텐트를 치고 죽기 전까지 지냈다. 김씨가 남긴 메모의 필체에 대해 그의 딸은 "아버지의 필체가 맞다"고 했다. 경찰이 십자가를 만든 나무를 판 목재소를 찾아가 확인했더니 나무를 사간 사람이 김씨였다. 여러 정황상 자살에 무게가 실렸지만 타살, 또는 조력자나 방조자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혼자서 정교한 처형 장면을 재현할 수 있느냐는 것부터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는 행위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도 자살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했다.

그러자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런 형태의 자살이 가능할 수 있는지 실험에 나선다. 그 결과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국과수는 현장 상황과 김씨의 메모를 근거로 사건을 재현한 결과 성인 남자 혼자 자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사인은 배에 있는 칼에 찔린 상처에서 출혈이 많았고, 몸이 내려가면서 목에 걸린 노끈에 졸려 질식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배 부위 상처는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 의해 발생할 수 있고 목이나 배 등의 끈자국, 손에 뚫린 상처 모두 현장에 있던 도구로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발뒤꿈치가 십자가와 떨어져 있어 양쪽 발에 스스로 못을 박는 일이 가능하고, 양쪽 손에 뚫린 상처 역시 뼈와 비켜나 있어 손드릴로 뚫을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즉 십자가에 못을 미리 박아놓은 다음 드릴로 손에 구멍을 뚫어 못에 끼웠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깊은 종교적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참을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김씨의 몸에서 알코올이나 약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국과수는 또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면봉이나 손톱, 면류관, 끈, 칼 등에서도 김씨의 DNA만 검출돼 타살이나 제3자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실행계획서 역시 김씨의 필적인 것으로 확인했다. 다만 국과수는 가능성은 작지만 자살 조력자나 방조자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오자 경찰은 김씨가 실행계획서를 남겼고, 십자가 제작에 사용한 목재를 직접 구입했으며, 예금과 휴대전화를 해지하는 등 주변을 정리한 정황으로 볼 때 단독 자살이 분명하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식적으로 자살이 가능하지 않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경찰 발표대로 자살을 했더라도 누군가 조력자가 있거나 방조자가 있다는 의혹을 계속 제기한다. 혼자서 발에 못을 박고 드릴로 손을 뚫으며 칼로 배를 찌르는 등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행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 인근에 세워져 있던 김씨의 차량 내부 모습 ⓒ연합뉴스

수상한 최초 목격자는 무혐의 처리돼

이런 의혹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바로 최초 목격자인 주씨다. 기독교계 언론에 따르면 주씨는 한국 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교회 부목사 출신이다. 1999년쯤 탈퇴한 후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폐채석장 인근에서 양봉업을 하며 혼자 지내고 있었다. 그는 '환생'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교리를 믿고 있었다.

양봉업자 부자를 사건 현장으로 안내한 것도 주씨였다. 당시 주씨는 양봉업자 부자가 아래쪽에 벌통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더 올라가지 말고 내려가자고 했는데도 "경치 좋은 곳이 있다"며 사건 장소까지 올라가자고 했다.

그는 또 시신을 목격한 후 공포에 질린 양봉업자 아들과는 달리 크게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카메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보통 사람의 행동과는 너무 달랐던 것이다. 더욱이 주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될 시점에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김씨 죽음에 관한 상세한 글을 올렸다. 이후 며칠 동안 시신 목격담과 자신이 촬영한 시신 사진을 공개적으로 게시했다.

뿐만 아니라 죽은 김씨는 주씨의 카페 회원이었고, 2008년 가을쯤 직접 문경으로 찾아와 만난 적이 있었다. 김씨는 그해 4월 주씨의 카페에 가입한 후 찾아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우연치고는 너무 기막힌 우연이다. 이 모든 게 하나의 짜인 각본처럼 연결되는 것이다.

주씨는 김씨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도 카페에서 언급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식'과 관련한 내 글을 읽고 3년 전(2008년)쯤 가을에 나를 찾아왔다. 그가 나에게 자기 스스로가 '예수가 아닌가'라고 하더라. 그 말이 자기 자신의 육체가 예수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 의식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그렇게 묻기에 '그렇지가 않다. 인간 누구누구가 예수가 될 수 없다'고 답해 줬다. 나의 신앙관과는 달라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말라고 잘랐다"고 했다.

경찰도 주씨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두 사람의 교류는 없었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십자가 시신'은 여전히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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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남자의 엽기적인 죽음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경북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에는 높이 970m의 둔덕산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특이한 암석 지형의 폐채석장이 있는데, 1990년대 말 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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