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INSIGHT

[기사] "집에 있어도 눈치, 나가도 눈치"..'황혼 이혼' 원하는 남성 늘었다

꿈꾸는꼬목사 2021. 6. 28. 05:44

 

상담건수 10년전보다 7배 늘어
황혼재혼도 4년새 20% 증가

◆ 황혼 '부부의 세계' ◆

"맨주먹으로 온갖 일을 해가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참 허망합니다."

70대 남성인 A씨는 최근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하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문을 두드렸다. 돈을 버는 대로 아내에게 맡겼는데 자꾸 사라졌고, 본인 몰래 집을 산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A씨는 상담사에게 "아내는 그렇게 하면서 내가 뭘 하고자 하면 사사건건 반대했다"며 "집에 있어도 눈치, 나가도 눈치였다. 애들도 모두 엄마 편만 든다"고 하소연했다.

가정과 행복에 대한 가치관 변화로 60대 이상 시니어 남성 중 '황혼 이혼'을 고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미 여성은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를 더 이상 참지 않고 황혼 이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제 시니어 남성들도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고 있는 것이다.

27일 통계청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혼인 건수는 줄어드는 데 반해 황혼 재혼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코로나19 영향으로 전년보다 10.7% 감소했다. 반면 60세 이상 남녀의 황혼 재혼은 9938건으로 오히려 전년(9811건)보다 127건(1.3%) 늘었다. 4년 전인 2016년(8229건)에 비하면 무려 20.7% 급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혼 상담소를 찾는 시니어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담소에 접수된 60세 이상 시니어층의 이혼 상담 건수는 총 1154명으로 전체 연령대의 27.2%에 달했다. 이 가운데 남성은 426명(43.5%)으로 집계됐다.

상담소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시니어 남성의 상담률이 무려 7.4배 대폭 뛰었다"고 설명했다.

[차창희 기자]

황혼부부 1분기 1만쌍 갈라서…새출발 택한 '新노년' 베이비부머


'황혼 이혼' 1년새 17%나 증가
신혼부부보다 두배 이상 많아
이혼·재혼연령도 크게 높아져

돈있고 오래사는 '젊은 늙은이'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겠다는
전통적 관념 약해진것이 원인

서울에 거주하는 80대 여성 A씨는 요즘 중학교 남자 동창 B씨와 교제 중이다. 이혼 경험이 있는 두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 자연스레 '연인'으로 지내기로 결심했다. A씨는 등산이나 음악회 등 취미 활동을 할 때면 항상 B씨와 동행하고 집에 손님이 올 때도 둘이 함께 부부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A씨 지인은 "A씨가 평소 '서로의 인생을 존중해주는 소중한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곤 한다"며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살고 계셔서 보기 좋다"고 말했다.

90대 여성 C씨는 최근 이혼 상담을 위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찾았다. 젊은 시절부터 외도와 폭행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괴로웠지만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참고 살았다. C씨는 상담 과정에서 "이제껏 참고 살아온 내가 불쌍하다"며 "함께 살자니 고생이고 이제 와서 안 살자니 창피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60세 이상 노년층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결혼 생활에서 야기되는 괴로움이나 힘듦에도 힘껏 참았던 노년층이 이제는 개인의 행복을 찾기 위해 '황혼이혼'을 택하고 있다. 특히 이혼을 경험했던 이들이 서로를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황혼재혼'을 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통계청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이혼 건수는 2만5206건으로 전년 동기(2만4358건) 대비 3.5% 증가했다. 특히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 된 부부의 황혼이혼 건수는 올해 1분기 1만191건으로 전년 동기(8719건) 대비 무려 16.9% 늘었다. 올해 이러한 증가 추세가 지속된다면 2019년(3만8446건)과 2020년(3만9671건) 황혼이혼 건수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1분기 황혼이혼 수치는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 건수(4492건)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재혼 전문 결혼정보회사 르매리의 서명옥 전무는 "최근 재혼을 상담하는 시니어 회원들은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며 "가정에 희생해오며 뒷전이었던 취미 등 자기 자신을 늦게나마 챙기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혼과 재혼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 시도 평균 이혼·재혼 연령을 살펴보면 지난해 평균 이혼 연령이 남성 49.3세, 여성 46세로 조사돼 1990년(남성 36.7세, 여성 32.6세)보다 크게 올랐다. 지난해 평균 재혼 연령도 남성 50세, 여성 45.7세로 1990년(남성 38.8세, 여성 34세)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황혼이혼과 재혼이 점차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개인 가치관과 인식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에는 전통적 의미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불편하고 애로사항이 있더라도 참고 살았던 반면 현대에는 개개인 생활이 우선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금룡 한국노년학회장(상명대 가족복지학과 교수)은 "인권 측면에서 노년층이 본인 삶을 선택하는 건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며 "다양한 개성과 특성을 지닌 개별 노년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왜곡되게 바라보는 건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경제력이 없는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기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개인 능력을 살린 '커리어 우먼'이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들이 황혼이혼 시에도 당당히 재산 분할을 요구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180도 변한 상황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현대 사회에서 고령층의 가족 형태가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가족 형태보다 구성원 행복에 초점을 맞춰 관련 제도·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황혼이혼·재혼의 확산이 경제적 여유와 수명 연장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베이비부머(Babyboomer)' 세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며 '젊은 늙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면서 본격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창희 기자 / 명지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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