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식인 논객들은 편가르기 구도의 졸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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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 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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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이행적 예언은 확증 편향(confirmationbias)의 일종이다.
확증 편향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으로, confirmatory bias 또는 myside bias라고도 한다.
앞에서 살펴본 인지 부조화 이론이 내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라면, 확증 편향은 외적 일관성에 관한 것이다.
영국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이 1960년에 제시한 확증 편향은 현실세계의 정보와 증거가 복잡하고 불분명한 가운데 자기 신념에 맞는 정보를 찾는 건 쉬운 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가설에 따른 증거를 찾으려는 성향은 설문조사에서 잘 나타난다. 설문조사는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묻는 게 “불행하냐”고 묻는 것보다 훨씬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1)
확증 편향과 관련, 작가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는 “기존의 사실들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했고,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고 했다.2)
또 터프츠대학 심리학자 레이먼드 니커슨(Raymond S. Nickerson)은 이렇게 말한다.
“확증 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3)
확증 편향은 논리학에선 ‘불완전 증거의 오류(the fallacy of incomplete evidence)’ 또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고 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나 자료만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걸 가리킨다. 마케팅 분야에서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가리켜 체리피커(cherry picker)라고 부르는 것과 통하는 말이다.
논지를 전개하는 사람이나 소비자 모두 접시에 담긴 신 포도와 체리 가운데 달콤한 체리만 쏙쏙 집어먹거나(pick) 체리가 올려져 있는 케이크 위에서 비싼 체리만 골라먹는 걸 빗댄 말이다.4)
확증 편향은 새로운 문제를 사실을 토대로 이해하기보다는 과거의 문제와 유사한 쪽으로 이해하려고 할 때에도 나타난다.
그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게 1998년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Monica Lewinsky)와 벌인 ‘섹스 스캔들’이다. 클린턴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모한 섹스 행각을 벌인 심리적 배경엔 “예전에 괜찮았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는 식의 확증 편향이 자리잡고 있었다.5)
보통 사람들보다는 전문가들이 확증 편향의 포로가 되기 쉽다.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야 하는 직업적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대형 사고의 이면엔 관리자들의 확증 편향이 작용한 경우가 많다.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어도 관리자들은 안전을 뒷받침해주는 자료나 증거에만 눈을 돌리기 때문에 경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분야의 가장 큰 문제점도 확증 편향이다. 경험이 많은 사람조차 활발히 정보를 모으면서도 자신의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정보를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6)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Wharton) 경영대학 교수 제임스 엠쇼프(James Emshoff)와 이언 미트로프(Ian Mitroff)는 미국에서 가장 큰 기업들의 전략 수립 과정을 연구하면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대기업의 경영자들이 자신들이 이미 수립한 전략을 지지해주는 자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신 정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며, 바로 이런 이유로 그런 전략의 대부분이 대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7)
학자들도 다르지 않다. 학자들이 자신의 가설을 반증하는 증거를 찾는다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그들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연구를 하는 건 아니다.
우선 당장 논문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가설을 확증해줄 정보만을 찾기에 바쁘다. 보통 사람들을 향해선 확증 편향을 버려야 한다고 훈계를 해대면서도 자신의 확증 편향은 넘어서기 어려운 것이다.8)
법관들도 확증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에서 법관 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판사들의 확증 편향이 일반인보다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즉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지 않고 선입관을 갖는 한 판사들이 재판 과정에서 쉽게 확증 편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9)
이런 연구 결과에 따라 서울 동부지법은 2013년 5월 20일 동료 법관이 진행 중인 재판에 예고 없이 들어가 재판을 방청하는 ‘암행법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세미나를 열었다.
판사들은 사건 당사자의 진술을 끊거나 그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 동료 재판관들의 행동 등을 좋지 않은 ‘법정 커뮤니케이션 사례’로 지적했으며,
재판관이 부드러운 표정을 할 필요가 있다,
사건 당사자들에게 지나치게 조정을 강요하는 것은 오해를 살 수 있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처리할 사건의 양이 많으면 법정에서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어렵다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10)
확증 편향은 정치적 논쟁이나 토론의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미국 정치에서 각각 좌우(左右)를 대변하는 대표 논객인 아리아나 허핑턴(Arianna Huffington)과 러시 림보(Rush Limbaugh)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자.
데이비드 맥레이니(David McRaney)는 『착각의 심리학』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불편해한다”며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기존의 세계관에 맞춰 세상을 한 번 걸러낸다. 그들의 필터가 당신의 필터와 같다면 당신은 그들을 좋아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싫어할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으려는 것이다.”11)
날카로운 지적이다. 이념과 정치를 다루는 지식인 논객들이 편가르기 구도의 리더라기보다는 졸(卒)로 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리더라면 그저 흥을 돋우는 치어리더일 뿐이다. 특정 논객과 지지자들의 관계를 ‘멘토-멘티’의 관계로 본다면, 세간의 상식과는 달리 멘티들이 멘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 있다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물론 멘토들은 멘티들에게 진한 감동과 더불어 행동을 하게끔 자극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마저 멘토가 프레젠테이션을 잘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 멘티들은 이미 듣고 싶은 메시지를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멘티들은 멘토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보내다가도 멘토가 자신이 애초에 갖고 있었던 구도나 틀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무시무시한 적으로 돌변해 돌을 던질 수 있다.
멘티들이 원한 건 ‘확증’이지 새로운 사고·관점·해석은 아니라는 것이다.12)
한국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치인들만 욕할 뿐 대중은 늘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정치인들은 대중의 확증 편향에 영합할 뿐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이 세상에 숱한 음모론이 성황을 누리는 것도 바로 확증 편향 때문이다. 어떤 정치적 이슈나 사안에 대해 편을 갈라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그 싸움이 확증 편향 간의 싸움이라는 것만큼은 인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물론 그마저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게 뻔하긴 하지만 말이다.
출처 : 이의용 교수님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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