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십니다
-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그 사랑 안에 있습니다.
- 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나는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 아브라함을 시작하면서 ]
- 지난 10개월이 넘도록 성경 전체 스토리를 나눴습니다. 이제 그것을 기초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성경에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중요한 이유는 깨어진 하나님 나라를 다시 시작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우리에게 일단 결론이 내려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을 죽일 수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거기에 모든 성경을 다 껴맞춥니다. 그런데 정말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일까요? 정말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일까요?
- 아브라함 설교를 준비하면서 수 많은 책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결단을 하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 만약 아브라함이 그렇게 완벽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저는 목사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내려놓을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브라함처럼 될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그 정도라면 저는 도저히 거기까지 갈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보고, 고민해봐도 그렇게까지는 할 자신이 없습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이후에 인간은 ‘답’없는 존재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매’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 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해도 결국은 나를 위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기 싫어해요. 헌신하고 수고하는거 싫어하는 존재에요. 내가 박수받고, 내가 인정받고 내가 높임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에요.. 그게 인간이에요. 100%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살펴야합니다.
[ 아브라함의 부르심 ]
- 이 세상은 이유를 찾고 싶어합니다. 그래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까요! 이유를 모르면 답답해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찾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부르셨겠지, 아무나 부르셨겠어? 특별한 그 무엇이 있으니까 부르셨겠지!!! 그러면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결단, 아브라함이 순종...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겁니다. 정말 그런지 하나씩 살펴봅시다.
- [PPT]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자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바벨론의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는 집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다르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할 특별한 점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 우리는 거기에서 이유를 찾지 못하니까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아버지 데라가 우상숭배를 하지만 아들 아브라함은 견디지 못하고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11:31 “데리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다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 누가 데리고 나왔나요? 데라가 데리고 나온 겁니다. 세계역사에 보면 이 시기에 바벨론의 왕이 우르의 시민 다수를 죽인 일이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려고 했던 겁니다. 아브람의 믿음으로, 아브람이 주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데라가 주도해서 갈대아 땅에서 나온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실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지만 가지 않고 어디에 머무르나요? ‘하란’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란은 어디입니까?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끝자락입니다. 여전히 바벨론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도시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울에서 만주까지 가라고 했는데 신의주 정도에서 머무른 겁니다.
- 왜 거기 머물렀을까요? 가나안까지 나아갈 자신이 없었던 거지요. 하란은 아직까지 바벨론의 영향력에 있지만, 하란을 벗어난다는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지켜주는게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니까 도저히 하란은 벗어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가나안’까지 가지 않고 ‘하란’에서 머물게 됩니다.
- 그런데 거기에서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32절 “데라는 나이가 이백 오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아버지 데라가 죽습니다. 데라가 가족들을 이끌고 하란까지 왔는데, 죽어버린 겁니다. 가족들을 지켜줄 아버지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무슨 결정을 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 그 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런 말씀하시는 겁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우리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이라 하신지라”
- 하나님께서 이 말씀은 어디에서 하신 겁니까? 하란에서 하신 겁니다.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겁니다. 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외의 말씀을 따라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세였더라” 어쩔 수 없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게 되는 겁니다.
- 바로 여기까지가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까지 들어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통해서 2가지 메시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
- 하나님께서 굳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우상숭배하는 곳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 아브람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아브람을 택하실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창세기 12:1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이 그 아브라함을 택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세워지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의 통로로 세워가시기로 결정하신 겁니다.
- 아브라함이 잘해서요?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있어서요? 아브라함의 성품이 괜찮아서요? 아니요! 그냥 하나님이 택하신 겁니다. 세상 말로 ‘운’이 좋은 겁니다. 완벽하기에 부르신게 아니에요. 믿음이 좋아서 자녀 삼아주신게 아니요, 능력있어서 구원해주신게 아니에요. 그냥 하나님이 불러주신 것이고, 자녀삼아주신 것이고, 구원해주신거에요.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해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있어서요? 여러분이 착해서요? 여러분의 성품이 괜찮아서요? 아니요! 그냥 하나님이 불러주신 겁니다. 자녀삼아주신 겁니다. ‘죄인’되었을 때, ‘원수’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거에요!!! 하나님이 구원해주셔서 우리에게 믿음이 생긴 것이고. 우리가 자녀가 된 거에요.
-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여러분이 선택하고 결정해서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 가지 상황과 환경과 사건을 통하여 여러분을 이 자리에 나아오게 하신거에요. 부르신 거에요. 우리 구원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이세요!
-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헷갈리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과 ‘구원 후 성장’입니다. 이 2가지를 구분하지 못하기에 신앙생활도 너무 힘들고, 자유함이 없는 겁니다. 예전에 성경공부하는데 다른 교회 장로님이라는 분이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그 이야기를 계속하시는거에요. 그 분은 장로이지만 복음이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인지 모르시는거에요.
- ‘구원’은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니에요. 그건 하나님이 해주셔야 하는 거에요. 성경은 왜 나를 자녀삼아주셨는지.... 왜 나를 구원해주셨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자녀삼아주셨고, 구원해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너에게서 그 이유를 찾지 말라는 겁니다. 너가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거에요. 왜요? 우리는 답 없는 존재잖아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매! 하나님이 찾으실만한 이유를 가질 수 없는 존재거든요!! 그러기에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를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할 고민이 아닙니다. 그건 이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신 겁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구원 후 성장’이에요. 어떻게 구원받은 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냐,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가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가느냐 바로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 내가 다시 죄를 짓고, 무너지고, 실패한다고 해서 그 구원이 취소가 될까요? 아니요~ 취소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로마서 11:2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내가 잘하고, 착해서 구원 받은거라면, 구원의 이유가 나에게 있다면 두려워하고 불안해해야합니다. 그런데 구원의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무너질 수 있고, 죄를 지을 수 있고, 바닥에서 무너진 채로 살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이에요.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어요.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셔요.
- 믿는다고 하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나요? 지금 내 신앙이 너무 연약한가요? 지금 내 모습이 너무나 바보같고 어리석어 보이나요? 신앙이 자라지도 않고 계속 여전히 그대로 인가요? 네~ 그럴 수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구원의 이유가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것이 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에요.
- 무너지셨습니까? 깨어지셨습니까? 또 어그러지셨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가 원래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번 넘어져요. 우리는 매번 깨져요. 우리는 매번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요. 그렇다고 우리의 구원이 취소되지 않아요. 자녀됨이 변경되지 않아요!!!!
- 그러니까! 하나님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붙드는 겁니다. 구원의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니까 변하지 않지요. 그러니까 달라지지 않지요. 그러니까 무너져서도 여전히 소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거지요!!!
- 오늘 예배하면서 다시금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둘째, 신앙은 끝까지 과정이다 ]
- 우리는 아브라함의 결론을 압니다. 바로 믿음의 사람입니다.
- 그런데 오늘 말씀을 살펴봤지만 아브라함의 시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불신자였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가시는 겁니다. 그 자리까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이끌어가신 겁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 삶의 본질이며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부르셔서 믿음이 생겨진 겁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고, 배워가게 하시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인지 알아가게 하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겨지는 겁니다.
- 믿음은 내가 믿어! 믿쉽니다! 그런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상대’를 알아갈 때 생기는 겁니다. 창세기는 계속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시고 또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라는 분을 알아가면서 그 분이 믿을만한 존재임을 알아가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을 바칠 수 있는 그 자리까지 가게 된 겁니다. 그의 일생을 두고 하나님을 알아간 겁니다.
- 갑자기 자신의 아들을 바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미친 겁니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제물로 바칠 수 있겠어요! 그건 말이 안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갑자기 교회를 처음 다닌 성도가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다 바치겠다고 하면 저는 말립니다. 왜냐하면 그건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그 분에 대한 믿음이 성장해가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이라는 분을 신뢰하게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살펴보면서 아브라함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믿을만한 분’이심을 봐야합니다.
- 아브라함의 삶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믿음 좋은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믿음이 괜찮은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믿음이 완전한 사람은 없다!! 다만 하나님이 설득하시면서 빚어가신다는 겁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과정중에 있다는 겁니다.
- 하나님의 관심사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스리는 자로, 경작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를 다듬어가시고 훈련시키시면서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시는거에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가시는 거에요.
- 목사 제 자신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과정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설득해가시는 겁니다. “내가 믿을만한 존재야! 내가 너의 인생을 맡겨될만한 존재야!” 계속 저를 설득해가세요. 어느 부분은 하나님께 설득되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계속 설득하십니다.
- 그래서 가끔씩은 낙망하고 좌절하지만 5년후, 10년후를 여전히 외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가신 그 자리까지 나를 데리고 가실꺼라는 것!!!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까지 데리고 가실 거라는 것!!!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은 한 번에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혼자 생각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생기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많은 환경과 상황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을 설득하고 계시는 겁니다. 때로는 문제를 만나게 하시면서 설득하시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설득하시고.... 고난을 통하여 설득하시고, 성공을 통하여 설득하시는 겁니다.
- 내 모습이 너무 실망스럽나요? 내 모습이 너무나 부족하고 모자라 보이나요? 내가 너무나 초라해보이나요?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다같이 과정중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좋은 사람도, 믿음이 나쁜 사람도 별 차이 없습니다. 다만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리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신다는 것! 바로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고집이며 의지입니다.
-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실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삶의 여러 가지로 여러분을 설득하고 계시는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서 믿음의 사람으로 더 아름답게 세워져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을 마무리 ] 예수는 나의 힘이요!!
-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이 나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없습니다. 늘 무너지고,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죄의 자리에 있고....그게 여러분의 모습이고 또한 저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결정되었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찬양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힘으로 고백하는거에요.
- 늘 부족하고 모자르고 깨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리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꺼에요. 끌고 가실꺼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기에 내 모습을 보면서 너무 낙심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다시금 그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 시간 함께 찬양합시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의 참 기쁨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의 꿈이십니다.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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