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말씀나눔/말씀 묵상과 나눔

[주일설교] 염려로부터 해방되기

꿈꾸는 꼬목사 2014. 7. 19. 16:59

본문 : 마태복음 6:25-33

제목 : 염려로부터 해방되기

날짜 : 2014년 7월 20일 1부 설교


[ Do Nothing ! ]

리더쉽이론에 보면, 리더는 4부류가 있다고 하지요. 

똑부 :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아주 피곤하고 얄밉죠! 힘든 리더입니다)

똑게 : 똑똑한데 게으르지요 (이런 리더가 좋다고들 합니다), 

멍부 : 멍청한데 부지런한거어에요. 거의 재앙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멍게 : 멍청한데, 게으리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리더가 되었는지 미스테리입니다.


가장 좋은 리더는 ‘똑게’라고 하지요. 똑똑한데 게으른 리더입니다. 최근에 키스 머니건이 쓴 “Do Nothing!”이라는 리더쉽에 관한 책이 있습니다. 책의 핵심요지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신뢰하고, 일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에 일하는 것 못지 않게, 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의도적인 게으름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가장 조직에 힘든 리더는 바로 ‘멍부’라고 합니다. 멍청한데 부지런한거에요. 능력은 없는데 부지런은 한거에요. 여기저기 일을 저지르고 답니다. 시키지 않은 열심과 열정으로 온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모습이 ‘멍부’같은거에요. 우리가 우리 삶을 압니까? 바로 내일도..아니.. 예배를 마치고도 알지 못하면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사는거에요.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요~! 우리가 얼마나 멍청합니까? 멍청하고 게으르면! 주위에서 도와주기나 하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늘 힘이 드는거에요. 


나는 그렇지 않다구요?(잠시 Break) 오늘은 염려, 걱정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염려를 한 단어로 정리합니다. ‘시키지 않은 열심’입니다! 다른 것은 시켜도 안하지만, 염려는 시키지도 않아도, 알아서 합니다. 얼마나 부지런한지 5년, 10년후의 일까지 고민하고, 때로는 몇 십년의 일까지 미리 근심합니다.


한 조사결과에서 우리가 근심하는 것들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는 변경 불가능한 과거의 일이고,

12%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에 대한 것들로 대부분 사실이 아니고,

10%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악화되는 건강에 대한 문제다.

실제로 8%만이 해결 가능한 실제의 문제들이다.


염려는, 시키지 않은 열심이에요. 할로웰 박사가 쓴 ‘근심’이라는 책에 보면, 많은 사람들의 근심은 갈 수 있는데까지 온갖 상상을 다하는게 보통이라는거에요. 사실에 의존하기보다는 한가지 근심에 다른 근심이 쌓여 연쇄 반응을 일으킬 때까지 그냥두는거에요. 하나의 두려움에서 다른 두려움으로 넘어가게하는거에요. 잘못된 정보에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건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면, 뭐 때문에 걱정을 시작했는지도 모르는거에요.


예전에 어떤 집사님을 뵈었는데, 얼굴이 너무 어두우신거에요. 그래서 집사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물었는데..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시는거에요. 어떻게 하냐고....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몸도 너무 안 좋아지고...무릎도 너무 아파지고...큰 병에 걸린 것 같다고 하시는 겁니다. 인터넷 찾아보니, 빨리 가서 입원하라는 하라고, 큰 병원부터 가보라는 이야기도 나와서 너무 놀라신 겁니다. 병원에 다녀오셨냐고 했더니... 내일 갈꺼라고... 그래서 기도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일간 연락이 없으신거에요. 제가 문자로 “집사님 괜찮으세요?” 연락을 드렸더니 “괜찮습니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서 뭐라고 하나요?” 답이 없으신거에요....1시간 지나서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살 좀 빼랍니다!”

 

어떤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염려로 시작해서 염려로 끝나요. 삶이 근심과 염려로 차 있는거에요. 염려는 하나의 증상이 아니라..삶의 방식입니다. 내 삶을 바라보는 관점,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염려’라는거에요.


[ 믿음의 반대는 염려 ]

믿음의 반대는 불신앙이 아니라, 바로 근심과 염려입니다. 염려의 본질은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은 근심과 염려가 떠날 수가 없어요. 왜?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며 살아가야하니까! 오히려 근심과 염려가 없는게 이상한거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왜 염려합니까? 왜 근심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왜 근심하고 염려합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그 분이 정말 하실까 걱정하는거에요. 염려하는거에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거에요. 

상대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할 때, 하나님은 무척 속상하신거에요.


어떤 집사님 부부가 드라이브를 하는데, 남편이 잠시 길을 헤맨거에요. 아내가 옆에서 잔소리하면서 염려하는거에요. 길 몰라? 잘못 든 거 아니야? 거기 못가는거 아니야? 모르면 물어봐 그냥가지 말고~ 그 말이 얼마나 남자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지 아십니까? 그냥 믿어주세요~! 길을 가다보면 다 나와요~ 다 통해요~ 그러니까 모르는 척 하는 센스가 필요해요~!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잊을 때 염려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복을 주시는 분이고, 창조주시고, 공급자시고, 명령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을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있게 됩니다. 그 때부터 염려하고, 불안하고, 걱정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염려에서 해방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통해서 3가지 메시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 ] 25-26절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염려란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서 나를 돌보실 것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그 분을 믿지 못하기에, 내 인생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수 없기에 자녀가 아니라, 고아처럼, 종처럼 살아가는거에요.


복음은 우리 신앙의 시작과 과정과 결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부입니다. 복음을 놓치는 그 순간, 우리의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헌신도..그 어떤 것도 의미없는 겁니다. 복음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내 방법을 붙들고 죽어가는 우리를 살려주셨다는 겁니다.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무슨 의미입니까? 나를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살리고 싶은거 아니겠습니까?


40대 남자분들과 성경공부를 하는데, 한 분이 이렇게 물으시는거에요.

목사님!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모르겠습니다! 왜 죽으세요? 도저히 모르겠다는 겁니다.

잠시 후에 제가 되물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 아드님 위해서는 죽을 수 있지 않으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잖아요. 자녀잖아요...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는 겁니다. 영상을 하나 보겠습니다!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 하나하나 돌보시고, 살피시는데, 태초부터 영원까지 계획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그렇게 돌보지 않으시겠냐! 말씀하신다!

로마서 8:32절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지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 아까운 것 이 무엇이겠냐는 겁니다.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겠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 앞에서, 우리가 그 사랑을 믿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속상하고 마음이 무너지는지 아십니까? 눈에 보이는 것 하나 들어주지 않았다고 아빠가 믿다고, 엄마가 싫다고 말하는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는거죠. 30절에..이 믿음이 작은 자들...하나님의 서운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태산같은 염려와 걱정 앞에서..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고백하십시오. 선포하십시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주신 이가 무엇을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사랑받은 자녀다!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리라! 이 고백과 선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 둘째, 내 한계를 인정하라 ] 27-30절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6)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 : 복을 주시는 자, 우리 : 복을 받는 자, 하나님 : 창조주, 우리 : 피조물,

하나님: 공급자, 우리 : 공급받는 자, 하나님 : 명령하시는 분, 우리 : 순종하는 자!


성경에서 죄란!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 바로 그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나타나는 죄의 열매 중 하나가 바로 염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하셔야 할 일을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죄의 열매인거에요.


27절 말씀에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내가 걱정해서 내 키 자라게 할 수 있어요? 그럼 우리 이렇게 안살죠~ 내가 걱정해서 내 인생은 몇 십년 더 살게 할 수 있어요? 아니에요~! 다시 말하면, 그것은 내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인거에요. 공급자의 영역이지, 공급받는 자의 영역은 아닌거에요.


그러기에 염려는 내 뜻대로 하고 싶은거에요.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거에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거에요. 그러기에 그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 졸리는거에요. 결과까지 내가 책임지려고 하는거에요. 


어떤 집사님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중이에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매번 체크하시고, 신경쓰시고, 연락 안되면 불안해하시고, 어쩔 줄 몰라하시는거에요. 네~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지요? 매번 걱정되지요? 염려되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요? 가실 수 있으면 가시면 되요. 그런데 갈 수 없잖아요! 그러기에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나는 공급을 받는 자구나. 나는 복을 받는자구나!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거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거에요.


염려와 기도는 함께 할 수가 없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기도란 ‘내 자리를 아는 사람의 반응’이에요. 내가 하나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내가 해야지요! 늘 분주하고, 늘 바쁘고, 늘 부산하게 다니는거에요!

기도는 내가 할 수 없기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자리가 아니기에 은혜를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데일카네기가 쓴 책 중에 ‘걱정없이 사는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갈렌 리치필드라는 사람이 ‘걱정거리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내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적는다

둘째, 그것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적는다 

셋째,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넷째, 그 결정을 즉시 실행에 옮긴다


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거에요. 무릎꿇는거에요. 하나님 은혜 구하는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의 저희 것임이요! 하나님을 누리는 겁니다!

내 한계의 지점에서 바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기억하며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셋째, 기도를 업그레이드하라 ] 31-32절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신앙도 단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영적 아이에서 영적 청년으로, 영적청년에서 영적 장년으로 성장해가야합니다. 거기에 따라서 기도도 달라집니다.

영적아이 일 때는 늘 달라는 기도만 합니다. 안 주면 울고, 떼쓰고, 엄마, 아빠 싫다고 난리를 치지요. 영적 아이일 때는 그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적 청년, 영적 장년이 되어갈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갑니다. 헤아려갑니다. 그리고 성장해갑니다! 내 뜻을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이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을 몇 십년하셨어도, 기도의 수준은 늘 영적 아이에 해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선한 뜻과 생각과 마음은 신경쓰지도 않고, 당장 내가 필요한 것만을 달라고 떼를 쓰고, 안 들어주시면 하나님 안 믿겠다고 온갖 협박을 다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합리적인 것! 그것이 정답이 아닙니다.

그런데 복음 공부를 하면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첫째, 예수님을 믿지만,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

둘째, 죄인이지만, 나는 잘 살고 있다고 하는 사람

셋째, 예수님을 믿지만, 내 것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

넷째, 예수님을 믿지만, 내 말이 옳다고 우기는 사람

다섯째, 나는 틀렸지만, 내 뜻대로 하겠다는 사람

일곱째, 하나님 영광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사람

여덟째, 예수님을 믿지만,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


잊지 마십시오. 신앙이 성숙할수록 기도는 2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겁니다.

둘째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주십시오 라는 겁니다.

내 눈에 보이는 내 뜻보다, 내 머리에서 나오는 내 생각과 계획보다

그것을 통하여,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뤄지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업그레이드 하셔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제목 있으시지요! 내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는 C.S.루이스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하도록 글과 책을 많이 쓴 사람입니다. 그의 자서전과 같은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 책에서 자신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면, 항상 나를 괴롭히던 문제, 즉 신체적 결함에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집안의 유전인데, 엄지손가락에 관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관절을 구부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만들기하는 것은 제대로 할 수가 없었고, 연장과 도구를 다루는 것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절망적인 실패에 눈물을 흘리면서, 최후의 방편으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뜻보다 그 분을 신뢰하십시오. 그 분! 믿을만한 분입니다.

아무래도 우리보다 똑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능력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사도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여러분의 기도를 업그레이드 하십시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강력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하고 싶으신 놀라운 일들이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염려를 넘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시작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마무리 ]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 바로 하나님을 잊을 때 염려하기 시작합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살아가려고 애쓰기에 염려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염려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기억하라

내 한계를 인정하라. 할 수 없는 것까지 하려고 하지 마라. 그것은 맡기라

기도를 업그레이드하라. 내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수준으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라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여러분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