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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알아가기 -2 ] 성경을 알아가야 하는 이유

꿈꾸는꼬목사 2022. 4. 10. 07:58

[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성경 ]
1534년 독일의 과격 단체가 뮌스터 지도자를 추방하고, 일부다처허용과 사유재산 금지, 비폭력을 주창하는 집단을 형성하였다.
1649년 선거권, 성문헌법,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요구하고, 살인을 제외한 모든 범죄에서 사형 철폐를 주장하던 세 명의 정치범이 처형되었다
1915년 한 젊은 변호사가 인도의 독립을 목표로, 평화로운 비협력 및 비폭력 항거를 골자로 하는 정치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들 모두 성경을 읽었다는 점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었는데 너무나도 다른 차이를 보이는 것은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2017년 한국사회도 너무나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어려움 한가운데 ‘개신교’가 위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탄핵이 진행되면서 그 갈등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탄핵을 반대한 쪽에서 태극기를 몸에 걸치고 ‘기도’를 합니다. 탄핵을 결정한 쪽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을 합니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이리 다르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리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까요?
혹시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성경은 한 권입니다. 오직 한 권인 성경을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읽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이 세상이 만들어가고 싶은 세상 ]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봅시다.
성경은 왜 읽어야 할까요?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읽어야 하는 것일까요?
세상과는 전혀 상관없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공부하고 알아야하는 내용일까요?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다른 나라,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비슷한 가치와 비슷한 내용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인권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 선포된 인권선언문을 보면
“제 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사회적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11조 조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350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성경’에서도 나타납니다.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만들어가기 원하는 세상의 모습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노동자를 착취하지 마십시오. 그가 여러분의 땅, 여러분의 성읍에 사는 사람이면 동족이든 아니든 그를 착취해서는 안됩니다. 하루 일을 마칠 때면 반드시 그에게 품삯을 주십시오. 그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여서, 당장 그 품삯을 받지 못하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14-15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모습은 지금 현대 민주사회에서 추구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별히 지금 시대에 인권, 즉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정은 더욱 그렇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읽는 책이 ‘잠언’서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좋은 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언은 모세 5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의 구체적 생활적용편입니다. 모세 5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만들어 가시려고 했던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모세 5경에 나오는 율법을 ‘구체적인 삶’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잠언’입니다. 

김근주 교수는 ‘복음의 공공성’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형성,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의 의미는 서로 연결되며,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은 정의와 공의를 기초로 한다”

이 세상이 만들어가려는 세상과 하나님이 만들어가기 원하시는 세상은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똑같습니다. 물론 ‘어떻게 그런 세상과 사회를 만들어가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성경과 이 세상이 이야기하는 접근방법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것은 성경을 알아가면서 하나씩 배워가게 될 겁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한 가지 집중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특이하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단순하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종교활동’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 삶에서 어떤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이 시대가 보기에도 가장 상식적이고,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일반적인 모습이 나타날 겁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분이라면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이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분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원리 역시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 묵상하면 할수록 이 세상을 살아가는 통찰력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그러기에 구약성경의 잠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의 결론은 ‘하나님’이라고 배웠습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중간과정은 생략되고 결론만 남았습니다. 과정은 내 마음대로 하고, 불의와 부정을 저지르면서 최종적인 결론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더 많은 헌금을 내고, 더 많은 봉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세상이 교회를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조금 더 근본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것의 결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다르게 말하면, 모든 것의 ‘기초’가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 분을 향한 믿음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말하고, 그 생각으로 행동하고, 그 생각으로 살아냅니다. 그렇다면 ‘결론’이 ‘하나님’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살아가는 그 시작과 과정 가운데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 것인지 되짚어봐야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세상과 사람을 알아간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창조주’라고 말하면 우리는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을 ‘목자’라고 말하면, 우리는 ‘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이해하면 다름 아닌 인간,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과 세상은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세상에 대해서 알아갑니다. 더 본질적으로 이해합니다. 바로 거기에서 통찰력은 나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누구신가? ‘자존자, 스스로 계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나옵니다. 인간의 ‘복’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붙들며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복’입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평안하게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 되고, 어려움이 없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벌’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이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더 복된 사림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알아간다는 것은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기 위한 것을 넘어서 

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며,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을 알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겁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아름다운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더 특이하고 이상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말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되짚어봐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