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INSIGHT

[퍼옴] 조선족 이주사

꿈꾸는꼬목사 2022. 2. 13. 08:28

 
저는 연변에 18년 살아온 한국 사람입니다. 그동안 여러 이유로 제 생각과 글을 자주 올리지는 않았는데요, 오해와 편견을 깨고 하나됨을 위해 부족하나마 글을 좀 올릴까 생각을 합니다.
조선족 이주의 역사는 여러 단계에 있지만, 해방이전까지 보면 크게 세단계로 이루어 집니다. 1차 19세기 후반과, 2차 1900년대, 그리고 3차 만주국이 세워진 무렵 1930년대 입니다. 초기 이주는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넘어 오신 분들이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독립운동 혹은 경제적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오신 분들입니다. 3차는 일제의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 (지금의 동북삼성)을 집어 삼키고 여기 농사를 위해 일제가 강제로 경상도 등 남도분들을 흑룡강쪽으로 이주 시킨 분들 입니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조선족 분들은 대부분 세 부류에 뿌리를 둡니다.
1930년대 조선족 가요를 연구해 보면, 흑룡강성을 비롯한 3차 이주에 오신 분들의 정서를 알수 있는데, 주로 부르는 노래의 주제가, "두고 온 내 고향", "고향이 그리워" 이런 류의 노래입니다. 강제로 이주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된 일 가운데 그런 노래가 위안이 되었겠지요.
반면, 이 당시 초기 이주자가 많았던 연변지역은, 학교, 선생님 등과 같은 생활속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이미 이주해 온지 2세 3세들이 생겨 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변에 있었던 우리 민족이, 3000만 동포라 하던 시기에 무려 180만에 가까운 동포가 그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대략 거의 6%에 가까운 사람들 입니다. 왔다 갔다 왕래하던 분들까지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1945년 해방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 하던 3차 이주자에게는 불과 이주 10년여 남짓한 기간 밖에는 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흑룡강 지역의 조선인들 80%는 원래 고향인 한반도로 돌아 옵니다. 그래서 한국 국적의 한국 사람이 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많은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만주 갔다 왔던 경험이 있다는 분들이 바로 이런 케이스 입니다. 그 숫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반면 초기 이주민이 많았던 연변지역의 조선인들은, 대부분 그냥 거기서 살았습니다. 해방이 되도, 삶의 터전이 대부분 거기 있었고, 이주는 할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일이지, 이곳을 떠날 이유가 크게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분들은 중국 국적을 갖은 조선족이 된 것입니다.
해방이후 일부 함경도나 북한이 고향인 분들도 있었겠지요. 그분들 중에 일부는 북한으로 돌아가, 북한 국적의 분들이 된 것이구요.
한끗 차이입니다. 만주 갔던 우리 조상들이 해방 이후, 어떤 결정을 했는가 그 순간의 결정이, 한국사람, 북한사람, 중국사람을 나누게 된 일이 되었다면, 그리고 나름 합당한 상황과 입장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갖는 오해와 편견은 지나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주 갔던 우리 할아버지가 해방 이후 그냥 거기 사셨다면, 우리 모두 중국 국적을 갖은 조선족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정말 한끗 차이입니다.
그 한끗으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이주한 많은 분들이 항일과 독립을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었는데... 그것을 우리가 무시하고 생각하면 무식한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1899년 북간도의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이주한 개척자 명동촌 분들의 이야기를 꼭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은진학교에서 있었던 수준 높은 교육의 모습도 여러분께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왜냐? 그분들의 대부분이 지금 조선족으로 남아서 연길, 용정, 화룡, 그리고 전 중국에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계신, 고마운 우리 선조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는 우리만 모를뿐 아니라, 조선족 분들도 잘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서로 조금만 더 시간을 내서 우리가 하나였던 그 때로 돌아가 관심을 갖고 공부한다면... 훨씬 더 우리 민족의 밝은 앞날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쓸데 없이 한복이나 트집잡지 말고 말입니다. 그럼 조선족 분들이 치파오를 입고 나오면 만족 하시겠습니까? 원래 중국은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국가 행사에 여러 소수민족 전통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행사에 그동안 해오던 이런 전통을 굳이 빼 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우리를 무시하는 행위가 아닐까요?
연길에 오면 한글 간판이 있고, 조선족 민족 학교가 있어 우리 말이 보존되고, 그래서 조선족 분들이 우리 말과 글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이 중국에 진출하고 중국과의 제일 교역국가가 되는데 ... 정말 솔직히 조선족 직원 하나 없이 된 어느 기업, 어느 공장이 있나요?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 모두 함께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오해와 편견의 굴레에서 제발 벋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야 우리 민족에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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