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그들 자손과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ㅡ'코스모스' 저자 칼 세이건
책 읽어주는 아빠들, 아이 뇌 자극하는 질문 더 많이 던져… 어휘력 발달에 효과적
하버드·옥스퍼드大, 추적 조사
아빠가 책 읽어준 아이들이 성적 높고 정서적 문제도 적어
英선 '아빠가 읽어주기' 캠페인
이스라엘 유대인 전통 '하브루타'… 매일 아이와 책 읽고 "왜?" 토론
"당근은 어떻게 자라는 걸까?" "우리가 왜 당근을 먹는지 아니?"
지난 20일 오후 5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부 아르노나 마을의 한 가정집. 유대인 아버지인 에릭 무스카텔(45)씨가 거실 탁자에 딸 모리아(7)와 탈리아(6)를 앉혀 놓고 질문을 던졌다. 눈동자를 돌려가며 골똘히 생각하는 딸들에게 무스카텔씨가 채소 재배를 주제로 한 우화 책을 읽어주자, 일곱 살 모리아가 물었다. "왜 당근 색깔은 주황색이에요?" 아버지가 바로 답을 못했지만 모리아는 "노란색인 햇빛과 갈색인 흙을 당근이 먹고 자랐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이처럼 유대인 가정에는 아버지가 매일 자녀와 마주 앉아 질문하고 대답하는 풍경이 일상적이다. 토론의 텍스트는 주로 동화책이고, 그 중심엔 아버지가 있다.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이 탈무드와 토라를 연구하며 만들어온 '하브루타(Havruta)'의 전통이다. 무스카텔씨는 "매일 하루 30분씩 책을 읽으며 아이들과 '왜'라는 질문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한다"고 했다.
◇"아빠가 읽어줄 때 어휘력 증진 등에 더 효과"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매우 뛰어난 교육법이며, 그중에서도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은 미국 저소득층 가정 약 430가구를 아빠가 책을 읽어주는 가정과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가정으로 나눠 책 읽어주기와 이해력, 어휘력, 인지 발달 간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조사 대상 엄마들은 절반 정도가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고, 아빠들은 불과 29%만 매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줬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에릭 무스카텔(오른쪽)씨가 지난 20일 자신의 집 거실에서 딸 모리아(7·왼쪽)와 탈리아(6)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위 사진). 지난 2일 핀란드 에스포 시립도서관에서 유카(37)씨가 여섯 살 난 아들이 책을 읽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알파벳을 깨치기 시작한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묻자 아버지가 대답해줬다(아래 사진).
'책 읽어주기' 효과는 아빠 쪽이 높았다. 예컨대 만 2세 때 아빠가 책을 읽어준 아이는 어휘 발달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엄마가 책을 읽어준 경우에는 아이 성적이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또 아빠가 책을 많이 읽어준 아이는 지식, 유아 언어, 인지 발달 면에서도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엄마가 책을 읽어준 아이는 인지 발달에만 일부 영향이 있었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는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
왜 이런 걸까. 아빠와 엄마는 '책 읽어주기 방식'에 중대한 차이가 있었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이한테 책을 읽어줄 때 '사과가 몇 개 보이니?' 등 '사실적 질문'에 집중했지만, 아빠들은 '오, 이 사다리 좀 봐. 너 지난번에 내 트럭에 있었던 사다리 기억나니?'같이 아이 뇌를 자극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김정완 하브루타교육협회 상임이사는 "아빠가 책을 읽어줄 때 엄마보다 다양한 어휘와 경험을 활용해 책을 읽어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아빠의 '책 읽어주기 방식'이 아이들의 사고력 발달과 상상력 확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2004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이 만 7세 아동 3300여명을 추적 조사한 연구도 유사하다. 아빠가 책을 읽어준 7세 아이들은 학교 읽기 성적이 높았고, 성인기에 정서적인 문제를 겪을 확률도 낮았으며, 만 20세까지 학교를 잘 다닐 확률이 높았다. 지난 2013년 연세대 연구팀은 "국내 만 2세 영아에게 그림책을 읽어줬더니 아동의 표현 어휘가 엄마가 읽어줄 경우는 상관관계가 없었지만, 아빠가 읽어줬을 때는 어휘가 많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영국·핀란드 등 '아빠 책 읽어주기 붐'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서는 '아빠의 책 읽어주기'가 한창이다. 지난 2일 오후 2시 핀란드 에스포시 공공도서관인 '타피올라 키르야스토'. 유카(37·Jukka)씨가 여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책을 읽어주러 왔다. 유카씨는 매주 수요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1시 퇴근한 뒤, 아들을 데리고 직접 도서관에 온다. 유카씨는 "아들에게 책을 직접 읽어주고 싶어 일주일에 한 번은 일찍 일을 마치고 퇴근할 수 있도록 회사와 계약했다"고 말했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아버지재단'에서는 '아빠가 매일 읽어주기(Fathers Reading Every Day)'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빠가 매일 읽어주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녀는 읽기와 쓰기, 산수 성적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보다 높게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내셔널 센터 포 파더링', '내셔널 파더후드 이니셔티브' 등도 가정과 학교생활에서 아빠의 책 읽어주기 참여 등을 확산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책 읽어주기에 적극적인 아빠들의 모임이 등장하고 있지만, 국가나 지역 단위 움직임은 아직 미비하다. '책 읽어주는 아빠'로 유명세를 탄 '푸름이 아빠' 최희수씨는 자신의 책 읽어주는 방법을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부모들에게 알리고 있고, '하브루타 아빠 연구소' 등 책 읽어주기에 동참하는 아빠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겨나고 있다.
출처 : 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3/29/20160329002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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