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이 단순히 사건을 재해석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발견을 통해 이루어질 때 가장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사의 실력을 신뢰할 때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견딜 수 있듯이,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을 견디고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시 상황
- 해석해야 할 사건: 오랫동안 회사에 충성하며 성실하게 일해왔지만, 나보다 실력 없는 동료가 정치적인 이유로 먼저 승진하고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하고 소외된 상황.
- 묵상할 말씀: 이사야 49장 15-16절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 이전의 해석 (하나님의 성품을 오해할 때)
이전의 해석은 하나님을 '공정한 거래자'나 '능력에 따라 보상하는 CEO' 정도로 생각하는 관점에서 나옵니다.
-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내가 열심히 일하면(Input), 하나님은 반드시 세상적인 성공으로 보상해주셔야(Output) 하는 분. 나의 성실함을 기억하고 계셨다가 적절한 때에 갚아주시는 분.
- 이러한 관점에서의 사건 해석:
- "하나님은 내 노력을 외면하셨다."
- (해석: 하나님이 내 성실함을 기억하고 계셨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리 없다. 그분은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거나, 나를 잊으셨다.)
- "나의 성실함은 결국 헛되었다."
- (해석: 세상적인 보상이 없다면, 나의 충성과 노력은 아무 의미 없는 시간 낭비였다.)
- "세상의 방식이 더 옳다."
- (해석: 결국 하나님을 믿고 성실하게 사는 것보다, 정치적으로 줄을 서고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더 지혜로운 길이다.)
- "나는 버려지고 잊힌 존재다."
- (해석: 회사에서도, 어쩌면 하나님에게서도 나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결과: 이러한 해석은 하나님에 대한 서운함, 배신감, 신앙에 대한 회의감, 냉소주의로 이어집니다.
2. 새로운 해석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할 때)
이제, 이사야 49장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이 사건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 말씀은 '보상하시는 하나님'을 넘어, 훨씬 더 깊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줍니다.
- 묵상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 어머니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나를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
- 나의 이름이나 성과가 아닌, '나'라는 존재 자체를 그분의 손바닥에 새길 만큼 귀하게 여기시는 분.
- 세상의 평가 시스템과 전혀 다른, 하나님 자신의 평가 시스템을 가지신 분.
- 새로운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사건 해석:
- "사람은 나를 잊고 내 공로를 무시해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신다."
- (해석: 나의 진짜 관객은 상사나 회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나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계신다. 세상의 망각이 하나님의 기억을 이길 수 없다.)
- "나의 진짜 가치는 승진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 (해석: 나는 이미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존귀한 존재다. 승진은 내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 커리어의 작은 이벤트일 뿐이다. 나의 정체성은 이 사건으로 조금도 흠집 나지 않는다.)
- "나의 성실함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헛되지 않다."
- (해석: 나의 성실함은 승진을 위한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배'였다. 그분께서 받으셨다면 그것으로 이미 최고의 보상을 받은 것이다.)
- "이 사건은 세상의 인정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게 하시려는 영적 훈련이다."
- (해석: 하나님은 이 억울한 사건을 통해, 썩어 없어질 세상의 칭찬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칭찬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나를 빚고 계신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가치관 교정'이라는 축복의 과정이다.)
결과: 이 새로운 해석은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깊은 차원의 위로와 안정감,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존감을 느끼게 합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상황을 겪어내는 나의 내면은 반석 위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 묵상은 사건에 대한 나의 감정을 억누르는 훈련이 아니라, 그 사건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고 그분과 시선을 맞추는 과정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들리는 땅 위에서도 반석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요동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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