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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꿈꾸는 꼬목사 2018.03.30 18:57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국내도서
저자 : 리오 휴버먼(Leo Huberman) / 장상환역
출판 : 책벌레 2000.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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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 장원제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 장원제도에 속한 농노에게는 일종의 보호장치를 갖고 있었다.

29. 교회가 엄청나게 부유해지면서 교회의 경제적 중요성이 정신적 중요성을 능가하면서 교회가 더 사악했다.

30. 교회와 귀족은 지배 계급이었다.  그들은 토지를 쥐고 있었고, 토지에 수반되는 권력을 쥐고 있었다. 교회는 정신적 도움을 제공했고, 귀족은 군사적 보호를 제공했다. 그 대고로 노동하는 계급들에게 노동으로 보수를 ㅏㅂㄷ았다.


- 그 시대에는 자본이 유휴 자본이었다. 운용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장원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십자군 전쟁은 상업을 촉진시켰다. 물품이 필요했고, 조달하기위해 동해해야갰다. 


- 특별히 4차 십자군 전쟁에서 베네치아는 수익성 있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면서 상인계급이 봉건제에 활기를 넣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화폐경제로 변모하게 된다.


- 상업의 증대는 도시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길드를 구성한다. 


- 그러면서 더 많은 자유를 요구하게 되고, 영주들은 상인과 도시에 자신들의 재산들을 팔기 시작한다.


- 상인과 도시가 획득한 권리는 상업이 부의 원천으로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도시 상인의 지위는 화폐 재산이 토지재산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더욱 중요해졌음을 보여준다. 봉건ㄱ 시대 초기에는 토지만이 부의 척도였다. 상업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종률의 부가 출현했다. 바로 화폐 재산이었다. 그러면서 중간계급이 정부 참여에 기회가 주어진다.


- 중세 초기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한 권력은 교회였다. 봉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돈을 빌리고자 하면 틀림없이 부자가 되기 위ㅏㄴ 것이 아니라 그 돈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빌리고자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농민의 지위가 변화가 생겼다. 잉여 생산물을 상인들에게 팔게 되면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그것으로 노동을 돈으로 대체했다.


-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흑사병'이다.많은 사람이 죽으면서 노동이 더 중요해졌다. 이것으로 노동자의 지위는 강력해졌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깨닫기 시작했다. 


- 토지를 사고 팔고 다른 상품처럼 자유롭이 교환했다는 사실은 낡은 봉건 세계의 종말을 뜻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서유럽을 휩쓸었고, 그 때문에 서유럽은 변모했다.  


- 도시가 생기고 화폐가 사용되자 수공 기능자들은 농업을 버리고 자신의 기술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생산에 종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길드가 만들어졌다. 서로 평등했다는 것과 노동자들이 쉽게 장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영향을 갖기 시작했다. 


- 그러는 사이에 중간게급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봉건 군대였다. 봉건 영주들이 더 이상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기에 강력한 중앙권력이 등장하게 된다. 


- 국왕은 도시의 강력한 동맹자. 봉건 귀족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모두 왕권을 강화시켰다. 도시 주민들을 국왕이 도와 준 대가로 흔쾌히 돈을 빌려 줌으로서 국왕은 도왔다. 돈이 있으면 국왕은 봉신들의 군사적 도움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 그러면서  국왕과 교황은 주교와 수도원장의 임명에 갈등을 갖는다. 그 이유는 큰 돈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초기 종교개혁자들은 실수했지만, 루터는 특권츠을 내쫓으려고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민족주의 정신에 호소했다는 것이다 .


- 신흥 중간 계급은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제가 더 이상의 발전을 방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신흥 중간 계급은 가톨릭 교회가 더 이상 진보를 가로막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야말로 봉건제의 요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회는 신흥 중간 계급의 공격에 맞서 봉건질서를 방어했다. 교회는 그 자체가 봉건 구조의 강력한 일부였다. 교회는 그 자신의 봉건 영주로서 토지의 약 3분의 1을 소유했으며, 교회재산의 대부분을 나라 밖으로 유출했다. 신흥 중간 계급은 각 나라에서 봉건제를 쓸어버리기 전에 먼저 그 핵심 조직, 즉 교회를 공격해야만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투쟁은 종교이 가면을 썼다. 그것은 종교개혁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신흥 중간 계급이 봉건제에 맞서 벌인 최초의 결정적인 전투였다. 


- 이러면서 해외 바닷길을 개척하면서 상업혁명의 시기가 된다. 


- 16-17세기에는 거지의 수가 놀랄만하다. 소수에게는 번영의 시대가 대중에게는 빈곤의 널리 퍼진다. 

- 토지에서 더 많은 고정수입을 얻고자 이들은 2가지, 엔클로저(왕에게는 불리, 상인들에게 노동자유입, 가옥한 지대징수.

- 1934년 2-3살, 미국 코테니켓주


- 영국에서는 1689년쯤 그 다음에 프랑스에서는 1789년 이후에 ㅣ장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중간 계급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혁명이 봉건제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1789년을 중세의 끝으로 기록될만하다.  봉건사회는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만로 이루어졌는데 중간계급 집단이 생긴 것이다. 더 증대되었다. 봉건재에 맞섰고, 투쟁을 예고했다. 결정적 세가지 전투! 1517년 종교개혁, 1689년 영국혁명, 1789년 프랑스혁명.. 봉건젤ㄹ 대신할만하느 체재를 만들었다. 바로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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