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이런저런 이야기/BOOK SUMMARY

'용서'

꿈꾸는꼬목사 2020. 9. 22. 10:58

 

- 용서하지 않는다면, 절대 미래를 맞이할 수 없다 "뎃몬드 투투 대주교"

1.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죄

p.9 자연스럽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이유는 용서가 원래 너무나 불공평하기 때문일 것이다.

p.17 어떤 일은 왜 용서할 수 없는가?
 1) 그들이 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신념을 거스르고, 그들의 도덕적 기반을 뿌리까지 뒤흔드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
 2) 그들이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

p.19 용서는 도덕적 측면을 항상 포함한다. 용서는 옳음과 그름,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마음쁜만 아니라 사랑, 연민, 긍휼을 수반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어쨌든 우리의 이러한 가치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내적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마치 공평과 정의를 부인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p.21 용서하지 않으면, 보복하려 하게 된다.
- 우리는 용서할 수 업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것을 공평하게 바로 잡고 싶은 자연적인 욕구로 인해 종종 복수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생각이 때로는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
- 중국 격언에 복수를 꾀하는 자는 무덤을 두개 파야 한다.
- 성경은 분노와 원한을 '쓴뿌리'로 묘사하며 경고하고 있다.
-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히브리서 12:15
- "마음은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 잠언 14:10

p.24 용서의 정의
- 우리가 받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남아 있는 문제는 어떤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그 분은 용서를 통해 우리의 잘못을 해결하신다. 과거의 상처를 다루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다.
- 용서를 뜻하는 영어 forgive는 주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게 확대되고 파생된 것이다. 우리는 보복할 권리, 완전하게 될 권리, 정의를 구현할 권리를 포기하고 그 대신 자신과 타인을 과거의 묶임에서 풀려나 미래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용서를 선물로 줄 수 있다.

2. 용서에 대한 오해

p.29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천진난만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지혜로운 자는 용서하고 잊지 않는다 "토마스 샤츠"

p.44 용서를 해주는 것은 가해자를 유리하게 하거나 그들의 책임을 벗어버리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가 우리에게 진 빚을 취소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도저히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을 말이다.

 

3. 용서와 화해

p.51 용서는 향수병에서 뿜어낸 향수처럼 세상에 뿌려지는 달콤하고 순정적인 이상이 아니다. 용서는 아프도록 고통스러운 것이다. "필립얀시"

p.51 용서와 화해를 두 가지 별개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화해를 하려면 언제나 용서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용서했다고 해서 화해를 장담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해서 화해가 보증되는 것은 아니다. 화해에는 상대방의 진실한 참여가 필요하다.

p.55 바울은 우리의 죄로 인한 빚은 오로지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다고 말한다 (로마서 6:23)

p.60 용서는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것은 내 안에서 내가 화는 일이다. 용서 과정에 다른 사람의 참여는 필요치 않다. 화해는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으로서, 쌍방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려면, 상처 입은 쪽에서는 용서를 해야 하며, 가해자 쪽에서는 경건하게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용서는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지만, 화해는 선택적인 것이며 가해자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4. 철저한 용서

- 실수는 인간적인 것이며, 용서는 신성한 것이다. "알렉산더 포프"

p.82 유대교에서는 가해자가 참회하지 않는다면 용서를 거론하지 말라. 용서에는 조건이 따른다. 잘못을 뉘우쳐야만 용서가 가능하다. 용서를 청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잔인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먼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해 달라는 청원을 받아야 비로소 용서할 수 있다. 이것은 조건적인 용서인 것이다.

p.86 대면과 가해자의 참회가 필수인 용서는 그렇게 큰 부담거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그와 반대로 용서는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가르치시면서 휠씬 더 급진적이면서도 자유롭게 접근하셨다.

p.91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5. 부인의 길과 쓴 뿌리의 길

- "용서하자. 하지만 절대로 잊지는 말자"

p.95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느데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 자신이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지 더 많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용서를 시작하는 자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다. 바로 우리가 상처를 받았던 가해 행동이 일어난 곳이다. 

p.97 부인의 길
- 가해사건 발생 -> 상처를 받는다 -> 선택한다 -> 부인하거나 자신을 탓한다 -> 감정을 억제한다 -> 우울에 빠진다.
- 만일 우리가 부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느낀 상처를 전면 부인하거나 발생한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두 가지 행동 중 하나를 취하게 될 것이다.

p.104  쓴 뿌리의 길 : 가해 사건 발생 
- 가해 사건 발생 -> 상처를 받는다 -> 사건에 대해 되풀이 해서 말한다 -> 선택한다 -> 힐난하거나 핑계를 댄다 -> 그 사건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갖는다 -> 배상받으려 하거나 복수할 기회를 찾는다 -> 고립되고 물러서게 된다 -> 쓴 뿌리를 갖는다.

 

6. 용서의 길

- "원망하기보다 용서하는 것이 더 대가가  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용서는 분노의 대가, 증오심에 드는 비용, 영혼의 낭비를 줄인다" 한나 모어

p.95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느데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자. 자신이 얼마나 많이 용서받았는지 더 많이 이해할수록 더 많이 용서할 수 있게 된다. 용서를 시작하는 자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다. 바로 우리가 상처를 받았던 가해 행동이 일어난 곳이다. 

7. 용서의 길

- "첫째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때까지, 둘째로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셋째로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용서는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다"  찰스 스탠리

p.149 자신을 용서해야 할 때 우리는 용서받은 사실과 용서받은 느낌을 구분하는 문제로 씨름하게 된다.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지성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나 잘못되었기에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가질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54 자신을 용서하는 과정을 신뢰하는 친구에게 나누는 것이 좋다. 그런 친구는 우리의 용서의 길에 게속 초점을 마주고 그 길을 걸어나가도록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