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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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주제별 글쓰기/나를 사랑하기

[ 나를 사랑하기 ] 04. 사랑받는 자가 되어가다

꿈꾸는 꼬목사 2020. 2. 1. 11:13

[ 나를 사랑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 ]
성경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받는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단절된 세상은 우리에게 '사랑받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말입니다. 결국 인생은 둘 중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한 자'  우리 인생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야기가 더 익숙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며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 조건을 갖추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러다보니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수치심'이 있습니다. 내가 싫은 겁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거지요. 왜냐하면 자격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야기하는 기준에 자격미달이기 때문입니다.

 

캐럴 드웩이 쓴 '마인드셋'이라는 책에 보면 못을 쏟은 아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아빠의 대화가 나옵니다.
   필립 : 이런, 난 너무 칠칠맞지 못해요.
   아빠 : 못을 쏟았을 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필립 : 뭐라구요?
   아빠 : 음... '못을 쏟았으니 주울게요!'라고 하면 돼
   필립 : 그게 다에요?
   아빠 : 그게 다지
   필립 : 고마워요 아빠

나를 사랑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수치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을 헷갈리지만, 죄책감은 행동에 관한 것이고, 수치심은 존재에 관한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책감에서 수치심으로 옮겨갑니다. 위의 대화에서 필립은 잘못했습니다. 그 때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입니다. 그런데 필립은 '난 너무 칠칠맞지 못해요'라고 말하면서 존재에 관한 이야기로 바꿔버립니다. 죄책감을 수치심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TED에서 수치심에 대해 강의를 했던 브레네 브라운은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에서 수치심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수치심이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사랑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뜻한다

결국 수치심은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문제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문제'가 있고, '부족함'이 있다는 겁니다. 만약 문제가 없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지요. 어떤 사람은 어떤 것을 몰라서 수치심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 때문에 수치심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무능해서 수치심을 느낍니다. 결국 인간이 느끼는 수치심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수치심은 '하나님'이 되지 못해서 느끼는 감정인 겁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힘들고, 관계가 어려워졌을까요? 우리가 상대에게 '하나님'이 되라고 요구하며, 또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좌절하고, 상대방이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실망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이 되려고 할까요? 왜 완벽하려고 할까요? 사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나' 아닌 '거짓 자아'를 만들어냅니다. 사이먼 터그웰(Simon Tugwell)은 8복(The Beastitude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듯 달아난 노예처럼 우리는 자신의 실상을 피해 달라나거가 아니면 거짓 자아를 만들어낸다. 거짓 자아는 다분히 훌륭하고 꽤 매력 있고 피상적으로 행복하다. 우리는 자신이 알거나 느끼고 있는 자(남들이 받아주거나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를 그보다 무난할 듯한 다른 모습 속에 감춘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예쁜 가면을 쓰고는 그 뒤에 숨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자신이 숨어 있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예쁜 가면이 자신의 참 모습인 줄 착각한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거짓자아'를 만듭니다. '거짓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으면 받을수록 더 초라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더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됩니다. SNS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만을 보이는 사람일수록 내면이 더 초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을 보여주고, 실수하는 인간이 실수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실패할 수 있는 인간이 성공만을 보여준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이고, 위선이고,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기에 더 공허함에 빠집니다. 그러기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나는 '사랑받지 못한 자'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다시 증명됩니다.

[ 사랑받는 자가 되어가는 것 ]
성경에서는 '사랑받는 자'라고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사랑받지 못한 자'로 살아갑니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도대체 이 차이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내가 '사랑받는 자'라는 것을 내 중심에서 고백하며, 그 사랑을 내 삶에서 더 깊이 경험하며 누릴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행복해서 웃을까요? 웃어서 행복할까요?" 이것은 꽤 오래된 질문입니다. 맨하임 대학교 프리츠 스트랙 등의 학자들이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하는데 일명 '이빨로 불펜물기'입니다. 스트랙은 일리노이 대학교의 남녀 대학생 92명에게 억지로 웃는 행동을 하게 합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무슨 실험을 하는지 몰라야 하므로, 참가자들에게는 미리 평소 잘 쓰지 않는 신체 부위를 이용해 어떻게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합니다. 

이후에 실험 참가자들을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게는 펜을 입술로 물게 하고, 두번쩨 그룹에게는 펜을 이빨로 물게하고, 세번째 그룹에게는 평소 사용하는 손이 아닌 반대의 손으로 펜을 잡게 했습니다. 이 중 펜을 이빨로 물게 하는 것은 아래쪽 사진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웃는 근육을 활성화시켜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실험 참가자들을 3개의 그룹으로 나눈 후, 참가자들에게 4개의 만화를 보여주고 나서 이 만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평가하게 합니다. 실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실험 참가자들 중 펜을 입술로 물었던 참가자와 평소 자신이 사용하지 않는 손으로 잡고 있던 참가자보다 이빨로 물고 있던 참가자들이 4종류의 만화에 대해 더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단지 펜을 이빨 사이에 물고 있었을 뿐인데 동일한 대상(만화)을 더 재미있는 것으로 인지한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실제로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 상태는 아니지만 얼굴 근육이 웃을 때와 같이 움직이고 있다면, 이 때 보는 대상을 더 좋게 느낀다는 겁니다. 작은 행동 변화에 따라 인식, 태도 등이 함께 변화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체화인지라고 부릅니다. 즉 생각의 변화에 행동이 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행동 변화에 따라 생각 역시 변화한다는 거지요.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행동을 변하게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생각을 변하게 한다는 거지요.  헨리 나우웬은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받는 자가 되어 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는 그 진리를 구현하는 것이네, 그것은 그 진리를 삶으로 드러내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네. '사랑받는 자가 되었다'는 개념이 나의 삶을 장식한 아름다운 생각이나 고상한 개념에 지나지 않아서 내가 낙담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만 한다면 , 실제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네. 정말 필요한 것은, 일상적인 실존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어가는 것이네. 내가 알고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의 모습과, 일상 생활 속에 수없이 존재하는 구체적인 실제들 사이의 간격을 조금씩 조금씩 좁혀 가는 것이지. 사랑받는 자가 되어가는 것이란, 그 진리 곧 위로부터 아래로 실제로 매시간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상사 속으로 계시된 그 진리를 붙잡는 것이네.

우리의 정체성은 '사랑받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행동을 통해 '사랑받는 자'가 구체화되는 겁니다. 삶과 행동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정체성도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건강하려면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운동이 건강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운동을 통하여 건강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행동이 중요한 이유는 그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받는 자의 삶은 사랑받는 자의 행동을 통하여 구체화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어려움은 무엇이냐?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받는 자'로 살아가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거지요. 나를 사랑받는 자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오히려 내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고, 다른 이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내 자신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겁니다.

이제부터 '나를 사랑하는' 12가지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씩 살펴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면서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이 내 삶을 더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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