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꿈을 꾸며

꿈을 꾼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신앙은 '생각'을 넘어 '꿈'을 꾸는 것이다

Part 4 주제별 글쓰기/나를 사랑하기

[ 나를 사랑하기 ] 03. 사랑받지 못한 자

꿈꾸는 꼬목사 2020. 1. 31. 19:15

[ 부정적인 것이 익숙한 우리 ]
성경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색할까요? 왜 이렇게 그것이 불편할까요? 왜 이렇게 그것이 내 마음에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이 세상을 접했습니다. 이 세상이 주는 메시지를 듣고 보고 자랐고,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수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메시지를 보고 들으면서 자랐을까요? 한 심리학자에 따르면 아이가 성장하면서 만 5세까지 최소 4만번의 야단을 맞는답니다. 그것은 한 달에 평균 666번, 하루에 22번의 나쁜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는 거지요. 다른 조사에 따르면 1번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사전에 6번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살고 있는 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믿음'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먼저 봅니다.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먼저 봅니다. 가능성보다 문제점을 더 빨리 파악합니다. 심리학 박사 셜리 임펠리제리가 쓴 ‘보이지 않는 심리’라는 책에 보면 사람들이 부정적인 것에 주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할 수 있는 실수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숲 속에 호랑이가 없는데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하나는 실제로는 있는데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호랑이가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면 그 단 한 번의 생각으로 죽을 수 있기 에,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없는데 있다고 생각하기 원한다"


결국 한 번의 실수로 죽음을 당할 수 있기에, 최악을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이런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요? 왜 이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까요? 왜 이렇게 최악을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 왜 이렇게 우리는 부정적인 되었는가? ]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지만 성경은 근본적인 이유를 창세기에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창세기 2:16-17절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늘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스리는 자'로 세워주셨지만 한 가지는 금하셨습니다. 바로 '선악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담과 하와를 향한 배려입니다. 이 땅을 '다스리는 자'로 살아갈 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다 감당하며 부담을 가질 수 있기에, 선악과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이 아님을 보여주고 알려주신 겁니다. "부담갖지 않아도 된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배려입니다. 그런데 뱀은 하나님의 마음을 왜곡해서 창세기 3:4-5절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습니다. 무엇을 의미하나요? 이제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겁니다.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하나님으로 공급을 받고, 복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기에 공급자가 없는 인간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고, 자기 중심적일 수 밖에 없어진 겁니다. 이런 모습이 대표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는 쓴 '전쟁의 역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전쟁은 역사의 근본적인 일부분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삶의 여러 핵심 요소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음식과 안전한 거주지는 원시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 우리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인간이 필요로 하는 그런 것들은, 배우자나 재산, 권력, 위신 등 인간의 욕구에 속하는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흔히 공급 부족상태에 있었다. 개인이나 집단이 끊임없이 서로 싸웠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러한 경제적 현실에 있었다. 즉, 최소한의 생존 여건을 위해 항상 경쟁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심리학이나 상담에서는 인간이 이기적이고, 외롭고 불안한 것은 인간의 실존이며, 인간은 원래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공급자가 없어진 인간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야하기에 다른 누군가에게 내 것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인간은 외로워집니다. 그 외로운이 지속되면 불안함이 됩니다.
성경에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갈등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사랑받은 자'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가 되라' ]
이런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 사회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아주 멋진 표현으로, 아주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메시지를 전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에 내 인생은 '사랑받는 자'에서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과 단절된 이 세상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받는 자'가 아니라 '사랑받는 자가 되라!'

우리를 성장하면서부터 부모에게 사랑받는 자가 되기 위해 착한 아이가 되어야 했고, 말을 잘 들어야 했고, 공부를 열심해야 했습니다. 착하지 않으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랑받는 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는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성공을 해야, 외모가 잘 생기고 예뻐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사회에는 '스펙'이라는 명목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사랑받는 자가 되라'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는 전제가 깔립니다. 세상은 너는 아직 사랑받을만한 자가 아니기에 돈, 명예, 권력, 성공 등으로 '사랑받을만한 자'의 자격과 조건을 갖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달려가고, 성취하고 성공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작점은 그대로 있는 겁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

[ 가장 큰 차이 ]
바로 여기에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받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공해도, 실패해도, 합격해도 불합격해도, 결혼해도 이혼해도, 아파도 아프지 않아도 어떤 상황과 어떤 결과가 주어져도 우리는 '사랑받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이 빌립보서 4:11-12절에 이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런데 세상은 우리가 '사랑받지 못하는 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공해도, 실패해도, 합격해도 불합격해도, 결혼해도 이혼해도, 아파도 아프지 않아도 우리는 '사랑받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성공하고, 합격해도, 승승장구를 해도 내면에 있는 수치심과 허무함과 공허함과 무기력함은 숨길 수 없는 겁니다.

세계적인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와 민간 항공우주업체 스페이스X 등을 이끄는 미국의 괴짜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가 2017년 7월에 행복함과 우울함의 양극단을 오가는 자신의 감정을 트위터에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일런 머스크만 그런 것일까요? 자기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허무함이며 공허함이며, 좌절감입니다. 성공하고, 성취하고,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서 이뤘는데 허무합니다. 공허합니다. 더 외로워지고, 더 불안해지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결국 '사랑받지 못하는 자'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인생은 둘 중에 하나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인생의 차이가 생깁니다.

'사랑받는 자'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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