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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기

[ 나를 사랑하기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by 꿈꾸는 꼬목사 2020. 1. 4.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차원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자매는 부모님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자매에게는 너무나도 심한 열등감이 있습니다.이 자매는 
왜 그럴까요? 그토록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왜 이런 모습을 보일까요? 부모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많이 닮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사랑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좋을 때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가워지고 사랑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립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문제가 있고, 부족하고 모자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열등감이 만들어집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분들은 열심히 봉사하고, 수고하고 애를 쓰는 분들입니다. 왜 이럴까요? 사랑받기 위함입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수고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험한 사랑은 그들의 삶의 수준에서 경험한 인간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경험하는 사랑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계산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오히려 나를 죽이고, 나를 무너지게 하고, 나를 더 결핍되게 만듭니다. C.S 루이스는 네 가지 사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무조건적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며, 그 자신 또한 파멸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자리를 허용받은 인간적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관계가 깨어집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관계가 멀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떠난 인간의 사랑은 집착이 되고, 욕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 부모의 욕심과 고집과 아픔과 상처가 담겨지기에,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겁니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로마서 5:6-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리라"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하셨느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어떠함에 상관없는 사랑이라는 겁니다. 나의 상황을 보고, 나의 현실을 보고, 나의 처지를 보고 사랑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인간이 범죄합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의 질서를 깨뜨렸습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죄를 지은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나갈 때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세기 3:21)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에도 끝까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이냐?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그 말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하나님이 보시기 좋았다고 하신 창조물을 하나님이 직접 죽이신 겁니다. 그리고 그 가죽을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단 번에 하실 수 있는 것을 일주일 동안 만드셨다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창조물을 죽이신 겁니다!!! 단 한마디 사과하지 않는 인간을 위해서......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아담과 하와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이 죽이셨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범죄한 후에, 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은 그들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 정도까지라고 말하나요? 이 땅의 사람들이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였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더 알아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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